[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쿼드와 인도·태평양 콘서트 구상

국제정치에서는 한순간의 외교적 선택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흥망성쇠, 나아가 명운이 갈리는 일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국제 협력체를 형성할 때 참가 여하가 해당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결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41년 8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대서양 헌장을 발표했다. 전체주의국가들에 대한 대항을 선언한 헌장에 동조한 국가들은 당시 독일과 대적하던 소련과 이미 망명정부를 구성했던 프랑스를 포함해 10여개국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전으로 귀결된 이후 대서양헌장 참가 국가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점하는 등 국제질서에서 주역 위상을 유지하게 됐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전후 국제사회로부터 교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참가하지 못하고, 유엔 가입도 상당 기간 지체됐던 것은 이 시기 국제정치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상황에 기인한 바 크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은 소련과 협력해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여러 우방국들에 재정적·기술적 참가를 요청했다. 유럽연합이나 캐나다, 일본 등이 초창기부터 적극적으로 참가를 결정한 반면 우리 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불참을 선택했다.

그 결과, 20여년이 지난 지금 참가국들과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에서 상당한 격차가 벌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달 국제우주정거장에 새로 파견된 5인의 우주인, 그리고 이들과 교대해 지구로 귀환한 4인의 승조원 가운데 일본인 우주비행사들이 다른 국가의 우주비행사들과 환한 미소를 짓던 장면은 지난 30여년 동안 일본이 미국 주도 국제 우주 개발 노력에 적극 참가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지난 2017년 이후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이 인도·태평양전략하에 형성하고 있는 쿼드(Quad)도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쿼드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군사적 견지에서 봉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전통적 안보상 필요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그리고 5G와 인공지능 등 첨단과학기술 분야에서의 공동 협력체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4개국 외상회의 합의와 쿼드 4개국 정상회의 공동성명이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쿼드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것처럼 민주주의국가 정상 간 협의체로 재편될 가능성도 크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인도·태평양 국가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서 쿼드와의 협력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우리 정부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국제기구에는 참가하지 않는다면서 쿼드 참가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쿼드 국가들이 보여주는 움직임, 즉 국제 항행의 자유, 보건 위협 공동 대응, 5G와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과학기술 개발과 표준화, 민주주의 정체성 확립 등은 우리 국가이익이나 정체성과도 부합한다. 민주주의 발전이나 첨단과학기술 개발 측면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이들 국가와의 공동 협조 체제에서 누락된다면 지금까지 쌓아 올린 한국의 국제적 평판이나 위상에 어떠한 영향이 초래될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초창기 쿼드에 적극 참가해 동맹국 미국의 외교 노력에 힘을 보태고, 나아가 동일한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는 여타 국가들의 폭넓은 참가를 유도해 인도·태평양 콘서트의 국제 협조 체제를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해가는 것이 중견 강국 위상을 가진 한국이 선택해야 할 외교 전략이 아닌가 싶다.

박영준 국방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