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냉전의 기억에 비춰 본 21세기 미중관계 해법

남중국해와 대만 방면에서 중국의 군사력 투사활동이 전례 없이 증대되고 있다. 북해와 동해함대 소속 중국 해군 함정들이 빈번하게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하면서 동남아 국가들의 긴장을 고조시킨 지 이미 오래다. J-16 전투기나 H6-K 전폭기 등 중국 공군 전력들은 최근 분리 독립 가능성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만 인접 공역에 대한 위협적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

역사학자 닐 퍼거슨은 이 같은 상황하에 주저 없이 미-중 간 신냉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와 달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은 중국의 전체주의를 경계하면서도 미-중 관계를 신냉전이라 부를 수 없다며 양국 간 기후변화나 코로나19 대응 등 협력해야 할 영역이 많다고 얘기한다. 현재 미-중 관계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든, 전략적 경쟁과 협력이 병존하는 관계로 호칭하든 초강대국 간 경쟁이 격화되면 그 사이에 처한 한국 같은 나라는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미-중 관계가 극단적인 결말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국들의 현명한 선택이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세계 10위권의 위상을 갖추게 된 한국 같은 중견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중반부터 전개된 미소 냉전이 어떤 이유로 파국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해소됐는가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 프린스턴대 교수는 냉전이 열전으로 가지 않았던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첫째 미-소 양국이 각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전면 대결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점, 둘째 양측이 충돌 방지나 핵 군비 통제 등 공동 규범을 만들어 준수했다는 점, 셋째 유고슬라비아나 스웨덴 등 중립국들이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도 비슷한 관찰을 제시했다.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같은 지도자들의 신사고적 외교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고, 양측 간 자유주의적 아이디어들이 교류된 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근욱 서강대 교수도 미-소 냉전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강대국 간 대결이 필연적으로 전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분쟁 촉발 요인들을 잘 관리하면 평화적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과 중국 지도자들, 그리고 한국 같은 중견국 정책 결정자들은 이 같은 분석과 제언들을 반추하면서 21세기 미-중 경쟁 속에서 안보·외교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중국의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하나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미-중이 공동의 협력적 규범을 창출하고 준수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냉전기 미-소 관계와 달리 미-중 간에는 다자 간 레벨에서 합의된 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규범 이외에 군비 통제 관련 공동 규범이 미흡한 실정이다. 미-중이 기후변화나 코로나19 대응뿐 아니라 군비 통제 및 신뢰 구축 등 분야에서 공동 규범을 창출하고 협력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둘째 중재자 역할을 여타 역내 중견국들과 협력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미국 주도 쿼드에 참가한 일본, 호주, 인도는 물론 동남아 국가들과도 의견을 조율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점과 한·중·일 협력기구나 믹타(MIKTA) 등 중견국 외교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셋째 한반도가 미-중 전략적 경쟁의 발화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미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합의 등 신뢰 구축 조치나 비핵화 합의들이 성실하게 준수돼야 한다. 특히 북한은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한국이 ‘오징어 게임’이나 K-팝(K-Pop)만으로 국제사회에 공헌하기에는 종합국력 측면에서 위상이 전례 없이 증대됐다. 미-중 협력적 관계를 견인하는 것이 향후 한국 안보·외교의 중대 과제가 돼야 한다는 인식하에 전략을 주도면밀하게 강구해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