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 서울 광화문 소재 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직장경력 4년차 김준섭(32ㆍ가명) 대리. 김 대리는 매일 아침 6시30분에 눈을 뜬다. (한국인 평균 기상시각 6시34분. 오전 6시대(32%), 6시 이전(24%), 한국갤럽 성인 1만2959명 대상 조사)

눈을 뜬 김 대리는 출근 준비를 후다닥 마치고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오전 7시10분께 집을 나선다. (직장인 출근준비 39분 소요. 취업포털 잡코리아 직장인 1461명 대상 설문조사)

헐레벌떡 집을 나서다보니 아침 식사는 매일 거른다. 먹어봤자 소화도 잘 안되기 때문에 아침밥 대신 잠을 좀 더 자거나 조금만 늦어도 ‘초만원’이 되는 지하철과 버스를 피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30대 남성 아침식사 결식률 42.8%. 서울시 통계)

[쉴틈 없는 한국인] 직장인 김대리의 24시간-copy(o)1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오전 8시10분께 회사에 도착한다. 김 대리는 출근에 딱 1시간 걸리지만 출근 시간이 1시간을 넘는 동료들도 많다. (출근 소요시간 1시간 이상 통근자 전국 433만명. 통계청 2010) 정신 없이 오전 업무를 하다 점심 시간에 첫 끼를 먹고, 다시 졸린 눈을 비비며 오후 업무에 돌입한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김 대리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 팀 동료들과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어느덧 밤 9시. 팀장님이 들어가고 나서야 회사를 나선다. (오후 8~9시 사이 퇴근하는 직장인 14.1%. 9시 이후 14.3%. 취업포털 사람인 직장인 1964명 대상 설문조사)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한 김 대리는 씻고 지친 몸을 뉘인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자정을 넘긴 0시30분께 잠이 든다. (자정에 잠드는 사람 31%로 가장 많아. 한국갤럽 조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국민 중 평균 수면시간이 가장 적은 한국(7시간49분)에 살고 있는 어느 직장인의 일상이다. OECD 평균(8시간22분)보다 30분 이상 적은 수면시간이다. 물론 7시간49분은 한국인 전체 평균이다. 조사 대상을 직장인으로 한정하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53분(한국갤럽), 6시간 12분(취업포털 잡코리아) 등으로 크게 줄어든다. 미국 수면재단(NSF)이 발표한 성인 권장 수면 시간은 7~9시간이다.

잠자는 시간이 적은 건 일하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OECD가 발표한 ‘1인당 평균 실제 연간 근로시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전체 취업자(시간제 근로자 포함)의 1인 평균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34개국 가운데 2위다.

반면 잠을 충분히 못 자서 그런건지 노동생산성은 늘 OECD 하위권이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OECD 34개 국가 가운데 한국인의 노동생산성은 25위에 그쳤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OECD 통계를 인용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일 중독’ 국가지만 노동생산성은 OECD 전체 평균의 66%에 머물며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 시대의 김 대리들이 효율적ㆍ생산적으로 일하며 삶을 즐기는 수는 없을 걸까.

전문가들은 한국인과 한국 기업들에 뿌리깊이 박힌 ‘근면성실을 강조하는 문화’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근면성실’에 대한 강박관념이 깊이 박혀 있다”며 “잠을 자고 쉬는 것에 대한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화이트컬러, 블루컬러를 막론하고 삶의 질이 낮은 이유는 우리 사회가 ‘일터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를 ‘가족 중심’으로 개선해 여가 시간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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