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베른/그림젤)=헤럴드경제 배문숙 기자]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국민 의견수렴 결과를 담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최종 권고안’을 정부에 정식으로 제출했다. 최종 권고안에는 쓰고 난 핵연료 포화단계 이전에 처분ㆍ관리를 위한 적정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담는 안전한 저장 기술을 연구할 지하연구시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원자력발전소 5기를 운영하는 스위스의 경우, 사용후 핵연료 처리 준비를 원전 발전 시작 직후인 1972년부터 진행해 왔다. 우리보다 한발 앞선 스위스 그림젤연구소에서 사용후핵연료 연구 방향과 과제를 짚어봤다.

원전 건설 직후 폐기물 영구 처분장 물색= 스위스는 발전량 기준 세계 16위 원전 발전국이다. 국가 전체 전력 수요의 38%를 차지할 만큼 원자력은 스위스의 주요 에너지원이다. ‘나그라(NAGRA)’는 국가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관으로 원전과 병원 등지에서 나오는 고준위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후보지를 정부에 추천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나그라의 지하 연구시설인 ‘그림젤 연구소(GTS)’는 원전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장소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스위스 원전 분야의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꼽힌다. GTS는 스위스 수도 베른시 남동쪽 120km 지점인 구타넨 마을에 있다. 현지 주민들은 원전 폐기물 연구시설이 들어 선 이 지역을 ‘그림젤’이라고 불러 GTS란 이름이 탄생했다. 아레(Aare)산맥 정상(해발 1600m)에서 약 500m 내려온 산 중턱(해발 1100m) 바위 속에 위치했다.

1982년 나그라는 이곳에 지하 동굴 연구시설을 건설해 방사성 물질 처리 연구를 진행해 왔다. 대부분 나라가 그저 원전을 짓는데 급급했던 것과 달리 스위스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까지 철저히 준비해 온 것이다.

이곳에서는 중저준위 및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방안 외에도 다양한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건설ㆍ운영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 공동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돼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스웨덴, 독일, 일본, 영국, 스위스, 대만, 체코, 미국 등지의 대학과 연구소 및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민에 믿음주는 정책과 설득이 관건= 스위스 정부는 4년 뒤 고준위 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결정할 방침이다. 나그라는 최종 부지 선정을 앞두고 각 지자체 및 주민들의 대표하는 시민단체 등과 충분한 의견 교환을 하고 있다. 기술적, 지질학적, 과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중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최종 선정 부지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반대가 나올 수도 있다. 나그라는 이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끝까지 설명하고 설득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잉고 블레슈미트 GTS 연구소장은 “원전 부지 선정에 있어 해당 지역의 반대 의견은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 아닌, 혐오시설에 대한 반대”라며 “따라서 주민 설득 작업을 끊임없이 진행해 마침내 이해하고 협력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설득하는 과정은 주민투표 등을 통해 스위스 정부가 담당하게 된다. 스위스의 이같은 결정 과정은 원전 부지나 폐기물 처분장 건설 등을 놓고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 운영주체, 이익집단 등이 나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관련 기관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고, 정부가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신뢰를 주면서 설득하는 스위스의 원전 정책 결정 과정은 우리나라의 원전 정책에 시사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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