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세상은 아직도 아픔을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는 곳이라는 희망가 ★★★ 고승희=‘사랑’이 살아갈 희망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한다 ★★★☆ 이혜미=내 투정과 엄살이 부끄러워지는 이웃들의 이야기 ★★★★ 정진영=시청률로 평가하지 마라. 보고 가슴이 울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

해마다 5월이면 같은 이름을 가진 다큐멘터리 한 편이 안방을 찾는다. ‘사랑’을 주제로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이 프로그램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따뜻한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MBC ‘휴먼다큐 사랑’이다.

열 살을 맞은 ‘휴먼다큐 사랑 2015’는 지난 4일 고(故) 신해철의 이야기(단 하나의 약속)로 첫 방송, 지난 11일에는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 부부의 이야기로 안방을 찾았다. 한창 때의 시청률에 비한다면 지난 몇 해 사이의 수치는 큰 폭으로 떨어졌으나 화제성 만큼은 예능 프로그램 부럽지 않다. 첫 방송에서 3.4%(닐슨코리아 집계ㆍ전국 기준, 이하 동일)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한 주가 지난 두 번째 방송에선 이보다 조금 오른 4.9%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 방송된 ‘안녕하세요’(KBS2ㆍ4.6%)를 앞섰고, ‘힐링캠프-기쁘지 아니한가’(SBSㆍ5.0%)를 바짝 따라갔다. 프로그램은 이후 3주간 계속 된다. 18일에는 안현수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2편을, 25일에는 한국인 아빠를 둔 필리핀 소년 민재의 일상을 담은 ‘헬로 대디’, 6월1일에는 고 최진실의 아이들 이야기 ‘진실이 엄마2-환희와 준희는 사춘기’를 방영한다.

일 년에 한 번뿐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제작진의 공력은 상당하다. 2006년 프로그램이 처음 태어날 당시 MBC 교양국에서는 ‘인간시대’를 히트작으로 만든 ‘휴먼다큐 본가’라는 자부심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누구나의 삶에 드라마는 있다”는 점에 착안해 6개월 이상 촬영하는 ‘휴먼다큐’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프로그램이 태어난 배경이다.

5월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해마다 가을이 되면 프로그램을 연출할 PD들이 정해진다. 다매체ㆍ다채널 시대로 돌입한 이후 ‘휴먼다큐’라는 이름도 평범해졌다. 흔하디 흔한 ‘휴먼다큐’와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PD들은 프로그램 기획의 첫 단계인 주인공 선정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각종 신문기사와 인터넷, 블로그는 물론 심지어 댓글 한 줄도 주인공 선정을 위한 자료가 된다.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희망을 다짐하고,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주인공을 찾는 과정엔 무려 2~3개월이 걸린다.

지금까지의 ‘휴먼다큐 사랑’은 총 38팀의 가족을 만났다. 2006년 ‘너는 내 운명’을 시작으로 ‘안녕 아빠’(2007), ‘엄지공주’(2009), ‘해나의 기적’(2013), ‘꽃보다 듬직이’(2014) 등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장애와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10년을 맞은 ‘휴먼다큐 사랑’은 지난 시간보다 조금 밝아진 모습이다. 대참사 이후 지독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김진만 CP)는 제작진의 바람이 컸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번엔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갑작스럽게 가장을 잃은 신해철 가족의 이야기에선 남겨진 사람들의 계속된 삶에 대한 희망이 그려졌고,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와 부인 우나리씨의 이야기에선 시련을 이겨낸 사랑의 힘이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졌다.

이모현 PD는 지난 2010년 ‘진실이 엄마’ 편을 방송한 이후, 4년 만에 최진실 가족의 이야기를 다시 담았다. 당시 방송분에 대한 기억 역시 이 PD에겐 각별하다. “‘부모를 앞서가는 것만큼 불효도 없는데, 진실이와 진영이가 너무 고맙다. 따라죽지 말라고 손주들을 남겨주고 가서 고맙다’고 말하는 최진실씨 어머니의 인터뷰는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이 PD는 10주년을 맞은 ‘휴먼다큐 사랑’의 리마인드 차원으로 최진실 가족에게 출연을 요청했다.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일반인도, 카메라가 익숙한 유명인도 섭외과정이 녹록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100번을 두드리면 99번은 안 된다”(이모현 PD)지만 주인공들이 출연을 결정하는 순간엔 “‘휴먼다큐 사랑’이기 때문에 하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일반인에서 유명인으로 대상이 바뀌었다고, 제작진이 지난 10년간 지켜왔던 프로그램의 기본이 흔들리진 않는다. 제작진은 주인공들이 마음을 열어줄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고, 최대한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담는다. 프로그램을 보고 감정을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시청자의 몫일 뿐, 제작진은 부러 과잉된 감정을 불어넣지 않는다. ‘휴먼다큐 사랑’이 시청자에게 불러온 작은 기적이 놀라운 이유다.

방송 이후면 시청자 게시판엔 ‘가슴이 따뜻해졌다’거나 ‘나의 삶을 반성하게 됐다’는 요지의 글도 줄을 잇는다. 누구나에게 자리하고 있는 선한 마음을 끌어내는 것도 이 프로그램이었다. 크진 않지만 쌈짓돈을 꺼내 마음을 전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만난 연예인들도 같은 변화를 만났다. 가수 이승환은 2006년 ‘너는 내 운명’을 보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곡을 쓰며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했고, 배우 김성령은 지난해 ‘날아라 연지’ 편의 내레이션을 맡으며 연지네 가족과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방송이 나가던 날 김성령은 연지네 가족에게 500만 원을 입금했다. 연지네 가족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너무 큰 돈이었다”며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해준 (김성령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 프로그램이 같은 이름으로 10년간 안방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제작진은 ‘휴먼다큐 사랑’의 원동력은 ‘사랑의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날이 각박해져 개인의 삶이 우선하고, ‘사랑의 원형’에 대한 갈증이 커져가는 때에 가족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한결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 프로그램은 평범한 것의 소중한 가치를 깨워준다. “진부해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시청자가 있었기에 ‘휴먼다큐 사랑’은 스무 살의 생일도 소망할 수 있게 됐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