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65년 사상 첫 여성 검사장 조희진…유리천장 깨고 검찰의 별이 되기까지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에요.”
아들은 어린이집 교사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 네모난 스케치북 안에 그려진 단란한 가정.
하지만 엄마가 있어야 할 곳에 아들이 대신 그려넣은 것은 이모였다.
나중에야 그림을 본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아들을 충분히 보살펴 주지 못한 미안함이 사무쳤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초주검이 돼 밤 늦게 귀가하는 생활이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주중에는 아들하고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기 힘들었죠.”
벌써 십수년도 지난 얘기를 회고하는 조희진(51ㆍ사법연수원 19기) 검사장의 낯에서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감지된다.
남성 위주의 검찰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나날들, 원치 않아도 붙어버린 ‘여성 최초’라는 꼬리표에 대한 부담감,
그런 자신을 묵묵하게 바라봐줬던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감성일 게다.
여검사로는 최초로 검사장급인 서울고검 차장검사에 발탁된 조 검사장.
전국 1909명의 검사 가운데 49명뿐인 검사장급은 일선 검사가 선망하는 이른바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자리다.
하지만 국내에 검찰조직이 생겨난 1948년 이후 2014년까지 65년 동안 ‘여성 검사장’은 없었다.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남(男)부럽지 않은’ 활약을 펼치며 종횡무진했지만
군과 검찰 그리고 경찰 등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는 ‘유리천장’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01년에는 군에서 간호병과 준장이, 2011년에는 경찰에서 첫 여성 치안감이 태어나면서 유리천장이 하나 둘씩 깨졌다.
그리고 2013년 12월, 마침내 굳건했던 검찰 내부의 유리천장도 파괴됐다. 그 주인공이 바로 조 검사장이다.
▶‘검찰의 맏언니’ 호칭, 내 마음에 별로 들지 않아요=여성 최초의 검사장이 된 감회를 묻는 질문에 답은 특별(?)하지 않았다.
“처음 검사로 임용됐을 때보다 기쁜 것은 사실이며, 검사로 일하면서 어려움과 보람을 많이 겪은 상태에서 검사장이 된 것은
더 열심히 검찰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소임을 맡은 것이라 생각돼 더욱 기쁜 것 같습니다.”
한 마디가 덧붙여진다.
“오랜기간 검찰에서 일하면서 여성 검사의 위상과 존재감을 보여주고 후배에게 비전을 심어준 승진이라 생각해 보람을 느낍니다.”
검찰의 ‘맏언니’로서 후배 여검사를 챙기는 평소 모습이 떠올려진다.
하지만 검찰의 맏언니라는 호칭은 조 검사가 썩 좋아하는 게 아니다.
조 검사장은 “집에서는 막내인데, 맏언니라는 호칭이 생경스럽고,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맏언니 하면 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느냐”며 농담을 건넨다.
그는 “새로운 보직을 맡으면 남자라면 당연히 맡는 것인데도 나는 항상 ‘최초’의 타이틀이 붙었다. 동료 남자 검사도 다 하는 일인데…. ‘난센스 아닌가’싶다가도 언제부턴가는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좋은 결실을 맺음으로써 여성 후배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실 조 검사장이 검찰에서 ‘여성 최초’ 타이틀을 모두 석권한 것은 아니다. 검찰에 여검사가 처음 등장한 건 1982년이었다. 연수원 12기로 임관한 조배숙ㆍ박숙경 변호사가 여성 최초의 검사 자리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여성 검사장 1호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조 검사장은 달랐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검사로 임관한 그에겐 ‘여성 1호’란 수식어가 해를 거듭할수록 추가됐다. 법무부 과장(여성정책담당관ㆍ1998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공판2부ㆍ형사7부장, 2007~2008년), 차장(고양지청ㆍ2009년), 지청장(천안지청ㆍ2010년) 등 그가 거친 길은 모두 여 검사로선 처음 지나는 길이었다.
선배 검사는 있었지만, 막상 조 검사가 검사의 길을 택할 때는 검찰 내에 여 검사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중간에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나갔기 때문이다.
조 검사장은 “내가 검사를 지망할 1990년에는 우리나라에 현직 여성 검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보다 먼저 두 분의 여성 검사 선배가 있었지만 80년대 중반에 검사를 그만둔 후 여성이 전혀 없었고, 검찰에 여성이 적응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며 “내가 검사를 지망할 당시의 검찰총장이었던 김기춘 현 대통령실장이 검찰에도 여성이 진출해서 할 일이 많다고 사법연수생을 격려했고, 여성도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검사를 선발한다는 분위기여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검찰을 지망했다”고 회고했다.
▶출산ㆍ육아ㆍ일, 모든 것을 여성 혼자 다 할 수는 없어요=차근차근 성공의 길만 밟아온 것 같지만 조 검사장에게도 여러 고비가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아이 출산 때다. 20여년 전 첫 아이를 낳은 직후 만성장염에 걸리면서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기를 몇 개월, 그러고도 수년을 더 투병생활하는 사이 몸무게는 30㎏대로 떨어졌다. 검사를 그만두고 건강을 추스르라는 주변의 조언에 마음도 많이 약해졌다.
“사회에서 열외됐다는 고독감, 병원에서 못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버림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하루였다. 병원 주변을 거닐다 좁은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레지던트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먹을 수도 없는 건데….’ 그렇게 조금씩 사소한 일상이 소중해졌다. 그는 조금씩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냈다. “같은 입원실의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비관에 빠져 있다가고 다시 웃고 떠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하고 힘을 얻었죠.”
무엇보다도 그에겐 검사로서 제대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물론 여느 워킹맘이 그렇듯 그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검사가 하는 일 자체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고,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휴일에 출근하거나, 집에 일을 가져와서 하는 경우도 많아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든지, 자녀 양육에 시간을 할애한다든지, 아이들 학습을 챙겨준다든지 하는 보통 엄마들이 하는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는 “양가 부모님, 특히 친정어머니의 전적인 협조와 남편의 도움으로 검사로서 격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돌이켜봤다.
검찰 내 유리천장을 깨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연수원 동기 중 선두주자는 2년 전, 나머지 동기는 올해 초 승진했지만 그는 명단에 들지 못했다. 두 차례나 ‘물 먹은’ 거였다. 사표도 썼으나 주변에서 만류했다.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여검사 전부의 일이니 기다리자”고 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정부가 출범해 첫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이와 함께 여성 검사장 탄생의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여성 변호사회와 조윤선 여성부 장관도 힘을 보탰다고 한다. 조 장관은 틈나는대로 여성 검사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렇게 유리천장을 깨고 검찰의 ‘별’이 될 수 있었다.
지나온 길이 고단해서일까. 다시 태어나도 검사의 길을 택하겠냐는 질문에 잠시 움찔한다. “지금은 선택한 검사의 길을 후회없이 열심히 하고, 다시 태어나는 게 확실하다면 그때는 다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계속 검사하면 지루할텐데….”
▶여성 검사? 별종 아니에요=조 검사장이 착실히 길을 뚫어준 덕일까. 여성 검사는 해마다 늘어 현재 500여명이나 된다. 전체 검사 4명 중 한 명은 여성 검사인 셈. 과거에는 주로 여성, 청소년 분야만 담당했지만 요즘 들어선 특수ㆍ공안ㆍ금융 등 인지수사부서 진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험한 일’이 많은 검찰에 여 검사가 많아지면 그만큼 어려운 일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조 검사장은 이에 대해 ‘편견’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우리 사회는 남녀 역할에 대해 편견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람에 따라 능력 여하가 결정되는 것이지, 남녀 성별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또 “형사소송절차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니 검사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없으나 사건을 보는 시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며 “여성은 일반적으로 원칙적이고 꼼꼼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반면, 가사ㆍ육아 등의 책임이 남성보다 더 무겁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결국 사람마다 다른 점이 있을 뿐, 남자냐 여자냐는 판단 잣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조 검사장는 후배 여검사에 대해 “결국 여검사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잘 선택해 집중력과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남자 검사와의 경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슨 일이든 무엇을 하든 어려움은 있게 마련인데 검사로 임관하면서 지녔던 포부와 다짐을 어려울 때마다 잊지 않고 상기하길 바란다”고 했다. “검사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되, 그 자부심은 크고 가진 것이 많은 국민이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국민을 위한 자부심이었으면 합니다. 이는 나에게도 들려주는 말입니다.”
▶예술흥행비자로 들어와 ‘접대부’가 된 외국 여성들, 이건 사실 인신매매=24년에 걸친 검사생활에서 그가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일까. 조 검사장은 ‘외국인 여성 근로자를 한국 고용주가 강간한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것을 꼽는다.
다른 근로자는 고용주가 당시 범행 현장에 없었다는 등 고용주에게 유리한 증언을 늘어놓았지만 조 검사장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단다. 피해자가 불법체류자라서 고소할 경우 강제출국당할 위험이 있음에도 이를 무릅쓴 데는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생각.
“피고용인이 고용주에 맞춰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고용주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봤더니 당시 성폭행 현장에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죠. 결국 구속기소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사건이 모두 종결된 뒤 피해 여성은 감사의 표시로 참외 한 상자를 사들고 왔다.
조 검사장은 그 일을 계기로 외국인 여성의 ‘인신매매’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지난해 ‘여성 인신매매 처벌과 피해자 보호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만들고 관련 세미나도 열었다. 정부는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행위의 정의와 처벌 조항을 규정했지만 한국의 수사기관은 법제상 인신매매를 매우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따라 고용주가 실제 인신매매죄로 의율돼 처벌된 적은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외국인 여성이 예술흥행(E-6)비자로 들어와 접대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적어도 합법적인 비자가 탈법적인 모습으로 관행화하는 것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외국인 여성이 ‘외국인 전용 유흥주점’에서 ‘가수’로서 ‘노래’를 하는 법적 근거를 다시 검토해 사실상 유흥종사자를 고용하기 위한 탈법적 수단으로 비자 제도가 변질되지 않게 법무부ㆍ고용노동부ㆍ문화체육관광부ㆍ여성가족부 등 관계 부처에서 법령과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비리검사? 스폰서검사? 모두 검찰이 노력해야 할 문제=2012년 말께부터 검찰 내부에서는 연달아 검사의 비리문제가 터져나왔다. 수억대의 뇌물을 받거나 여성 피의자와 강제로 성관계를 한 검사, 또 친척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알선한 검사가 있는가 하면 연예인인 여성 피의자의 ‘해결사’노릇을 자처한 검사도 있다. 연일 터져나오는 검사의 추문, 그만의 생각이 있을 것 같았다.
조 검사장은 “비리검사, 스폰서검사 등의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만큼 검찰 내에서 감찰, 징계, 처벌 등 엄격한 잣대가 강조돼야 할 것”이라며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교육도 필요하며 검찰에서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바르고 당당하고 겸허하게’ 검찰을 이끌어가겠다는 신임 총장의 당부를 검찰 구성원 모두 가슴에 새기고, 조직 구성원 모두 업무와 개인생활에 있어서 절제되고 바른 태도와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자성론은 이어졌다. 상부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인 검사에 대해서는 “최근 갈등구조가 사회 전반에 일반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의 계층 간ㆍ세대 간 갈등이 첨예한데,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강조하는 잘못된 생각도 우리가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검찰 개혁에 관한 견해도 내놓는다. “아무래도 검찰이 사회의 갈등과 분쟁의 최종점에 있어서 사회갈등이 성숙하게 해결되는 때가 오기 전까지는 검찰에 대한 시각이 금세 따뜻해질 것 같지는 않은데 검찰의 권위적인 문화는 변화해야 하고, 검찰 구성원 모두 국민이 원하는 검찰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고, 현재도 노력하고 있지만 국민의 신뢰를 얻기까지 계속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학창시절 학업에 충실하긴 했지만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잡념도 많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했단다. ‘보통 여고생’이었다고 주장(?)하는 조 검사장. 여성 검사장으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앞으로 검찰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여성 검사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립하고 싶다는 포부로 인터뷰를 정리한다. 부드러움 속의 강인함, 최초 여성 검사장으로부터 받은 기자 느낌 일부에는 앞으로 검찰이 나가야 할 이정표 하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김재현ㆍ김성훈 기자/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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