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 인도네시아 국적의 마르띠(가명ㆍ38) 씨는 고국에서 근로계약을 맺고 지난해 2월 한국땅을 밟자마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일할 곳을 식품공장이라고만 소개 받았는데, 막상 배치받은 곳이 ‘순대 제조공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 였다. 순대는 돼지창자에 선지, 찹쌀, 각종 야채 등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이슬람 교도들은 먹지 않고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사업장을 옮기기 위해 애썼던 그는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서야 직장을 옮길 수 있었다.

#. 2년 전 고용허가를 받아 입국한 방글라데시아인 알라르(가명ㆍ30) 씨. 그는 선천적으로 폐가 좋지 않았지만 제철회사를 다녀야했다. 온종일 쇳가루가 날리는 작업현장 탓에 건강이 나빠진 그는 회사를 옮기길 원했지만, 고용허가제로 인해 3년 계약기간에 묶여 회사를 옮길 수 없었다. 이로 인해 회사와 갈등을 겪었고, 한달간 정직 처분도 받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회사측은 정직기간 동안 매일 전화해 위치를 보고하라고 했고, 이를 어길 경우 불법 체류자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한 때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이 인기를 끈적이 있었다. 2000년대 초 남자 개그맨이 외국인 분장을 하고 TV에 나와 어눌한 외국인 말투로 한국 노동시장에 뛰어든 그들의 애환과 한국인의 차별을 꼬집으며 외친 말이다. 금새 유행어가 됐다. ‘사장님 나빠요’라는 짧은 문구는 구타와 폭언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로 부터 10년이 지난 2013년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다행히 고용허가제도가 실시되면서 최저임금보다 못한 급여, 폭언, 폭행 등 노골적인 차별은 사라졌다. 하지만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일자리를 둘러싼 이주노동자와 한국노동자간 갈등, 직장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제도 등은 여전하다.

과거만큼 노골적이진 않지만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왜곡돼 있다. 이 왜곡된 시선은 사람들 인식 깊숙이, 더 널리 퍼지고 있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모임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조차 적용되지 않던 이전과 비교하면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직 약자에 대한 천시, 노동자들에 대한 멸시가 담겨있고, 이것이 제도나 정책으로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이주동포나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어불성설이란 지적이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은 “일부가 중국동포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오해”라고 단언한다. 그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맡고 있어 일자리를 놓고 서로 충돌할 경우는 많지 않다. 중국동포가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을 36개로 제한할 때 이미 일자리 충돌에 대한 부분이 고려 됐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이어 ”허드렛일들은 중국동포들이 주로 하는 상황이며, 일자리 침해만 생각하지말고 이들로 부터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족쇄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연수생제도를 대신해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는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등 최소한의 노동자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방문취업비자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본국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이들은 길게는 ‘4년 10개월’동안 사업장을 3번만 옮길 수 있다. 사업장 변경조차도 폭행, 임금체불 등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신청에 순순히 응할 때에만 가능하다.

서민식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는 “직장을 맘대로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생각해보라”며 “실질적인 노예제도며 즉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