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8회> 총칼 없는 전쟁 28
카 레이싱의 이면에 죽음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가끔 목숨을 걸 줄도 알아야 카 레이싱의 매력을 깨닫게 된다는 것과 같다. 고작해야 오락실에 찾아가서 동전 넣고 즐기는 화면 속의 레이싱이나, 혹은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차차차’게임을 하는 것과 실제로 목숨을 걸고 달리는 것과는 차원부터가 다를 것이다.
유호성에게 죽음의 불안은 본능으로 다가왔다. 만약 스마트폰의 ‘차차차’게임이었다면 100만점을 돌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겠지만 5개국 관통 랠리를 앞둔 말고개 굽잇길 경주에서는 차마 목숨까지 집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뜩이나 울고 싶은데 따귀 때려준다더니… 더 이상 도망칠 기력을 잃었을 즈음에 또 다른 경찰차 한 대가 말고개 내리막길을 가로막은 채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유리 씨, 저 앞에도 경찰차가 가로막고 있어. 어떡하지? 죽는 한이 있어도 들이받아서 박살을 내버려?”
물론 뻥이었다. 하지만 뻥을 칠 경우에도 액션만큼은 드라마틱해야 하는 법. 그는 불현듯 경적을 울리면서 속도를 더욱 높였다.
“어머, 호성 씨! 무서워요!”
그러면 그렇지. 강유리는 롤 바에 묶인 몸을 한껏 꿈틀대면서 소리 질렀다. 반은 비명, 반은 애걸이었다.
“무섭다고 차를 세워? 경찰한테 그 꼴을 어떻게 보여?”
“그렇다고 죽어요? 이 꼴로?”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호성은 이미 1974년산 치타의 속도를 한 단계씩 줄여나가는 중이었다. 6단에서 5단으로, 4단, 3단…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강유리의 알몸이 차창 밖으로 빨려나갈 것처럼 느껴졌다.
울컥! 치타가 멈춰서자 위로 번쩍 들렸던 그녀의 엉덩이가 털썩 시트에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만일을 대비하여 차만 세워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경찰관 두 명이 황망히 치타 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아직도 불이 번쩍이는 경광봉 끝으로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죽으려고 작정하셨습니까?”
경찰관 한 명이 이렇게 말을 건네는 순간, 끼익!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뒤따르던 산악용 SUV와 경찰차 한 대가 치타 옆을 호위하듯 막아섰다.
“제까짓 것들이 어디까지 도망가려고 그래?”
뒤쫓아온 경찰관들이 황급히 차에서 내려섰고, 권도일과 현성애도 서로 경쟁하듯이 SUV차량에서 내려섰다. 오로지 그들의 관심은 죽은 딱정벌레처럼 멈춰선 1974년산 치타의 검은 창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
“저 안에 분명히 유호성이 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여자는 누굴까요? 벌건 대낮에… 깡도 좋아, 저 여자.”
“나도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그나저나 유호성 씨가 확실하다면 어떡해요?”
“뭘 어떡해요? 오지게 창피 좀 당한 뒤에… 돈으로 막아야지요. 애꿎은 회장님 주머니만 축나는 거지 뭐.”
이렇게 수군대는 사이에 스르륵! 치타의 창문이 열리고… 차창 밖으로 사내의 얼굴이 삐죽 드러나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유호성이었다. 그렇다면 옆 자리에 헐벗은 채 매달려 있는 여자는 과연?
경찰관 넷, 권도일, 현성애… 그들 여섯 명은 약속한 것처럼 치타 안을 훔쳐보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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