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아 교통사고 사망사건 코스타리카 가해자 뒤늦게 처벌 형사사법공조후 21년만에 최초
지난 1월 29일 오전 7시30분, 서울 중앙지검 외사부 1404호 검사실. 40대 부부 한 쌍이 검사실 문을 노크하자, 웹캠(화상채팅용 카메라)과 마이크가 설치된 노트북 앞에서 이들을 기다리던 검사와 수사관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같은 시간(현지시간 1월 28일 오후 4시30분) 코스타리카의 법정에는 60대 노인과 변호사, 코스타리카 법정 판사, 코스타리카 검찰, 주코스타리카 한국대사관 직원 등이 참여한 재판이 열렸다. 특이한 것은 이 법정에도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가 결합된 화상회의 장치가 달려 있었다.
이렇게 1만2000㎞를 거리에 두고 한국과 코스타리카, 두 나라에서는 동시에 재판이 열리기 시작했다. 2009년 11월께 코스타리카에서 발생한 한국인 여자아이의 교통사망사고와 관련된 재판이었다.
2009년 11월 3일, 어머니 A(41ㆍ여) 씨와 함께 코스타리카에서 등교하던 김모(당시 6세ㆍ여) 양은 갑작스럽게 달려온 차에 치어 숨졌다. 차는 그대로 달아났고 A 씨는 이후 남편의 현지법인 파견이 종료돼 사건의 해결을 보지 못한 채 귀국해야 했다.
수사를 맡은 코스타리카 수사기관은 B(66ㆍ여ㆍ캐나다 국적)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B 씨가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해 왔다는 것. B 씨는 계속된 수사에서 “나는 결코 사람을 차에 치고 달아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마땅한 목격자도, 증인도 없는 상황에서 코스타리카 검찰은 B 씨를 기소하기 어려웠다.
3년여 끌어오던 사건은 A 씨가 한국 법무부에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맞았다. 1992년 코스타리카 정부와 형사사법공조협약을 맺었던 우리 측은 증인이 없어 사건진행이 더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2012년, 사건의 빠른 진행을 요구했다. 24시간이나 걸리는 비행시간 대신 필요하다면 한국에서 증인들을 화상재판을 통해 출석시켜 증언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제안도 덧붙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코스타리카 법무부는 화상재판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는 사법공조요청서를 지난해 12월 18일 법무부에 보내왔다.
문제는 15시간이나 되는 시차였다. 대사관을 통해 최적의 시간대를 협조한 이들은 결국 지난 1월 29일 오전 7시30분에 재판을 개최하기로 합의하고 필요한 장비를 통해 화상재판을 실시한 것이다. 1992년 8월 형사사법공조조약 체결 이래 21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 실시된 국제 화상재판이었다.
화상재판에서 A 씨는 노트북 컴퓨터 앞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3년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그에겐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통해 전해지는 그의 증언에 완강히 범행을 부인해오던 B 씨도 누그러졌다. 결국 B 씨는 코스타리카 검찰에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을 요청하며 범행을 시인했다. B 씨는 화면을 통해 보이는 A 씨 등 유족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도 구했다. 코스타리카 검찰은 이에 따라 징역 3년(집행유예 3년)에 합의금 미화 2만달러 지급을 조건으로 형량을 확정지었다. 3년간 A 씨 가슴에 품어왔던 딸을 잃은 한이 어느 정도 풀리는 순간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73개국과 사법공조를 이루고 있고, 2012년 103건을 해외에 공조요청하고 113건의 공조요청을 받아 처리하는 등 활발히 협력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당한 범죄 역시 법무부나 수사당국을 통해 국제사법공조로 해결할 수 있는 만큼 이 제도를 이용하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김재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