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 히어 더 피플 싱?’(Do you hear the people sing?)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리케이드와 군중의 깃발, 죽은 시민들이 부르는 이 합창곡은 관객을 울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에선 “피가 끓었다” “나도 모르게 박수가 나왔다”는 감상 평이 적지 않다. 소수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의식이 답답한 현실과 맞물려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출간한 레미제라블은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이전 격랑의 시기를 주요 무대로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루이16세가 처단된 뒤 프랑스에선 왕정이 폐지된다. 과격파 로베스 피에르가 1793년 정권을 장악했지만 공포정치로 2년만에 실각했다. 1799년 쿠데타를 성공시켜 제1 통령이 취임한 나폴레옹은 사회 질서를 잡아갔지만 1804년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트라팔가르 해전(1805년), 예나 전투(1806년), 러시아원정(1812년), 라이프치히 전투(1813년), 워털루 전투(1815년)까지 전쟁을 거듭하면서 몰락을 자초했다. 나폴레옹이 폐위되자 프랑스는 다시 왕정복고로 회귀, 시민의 삶은 귀족의 노예 수준으로 전락하고 피폐해져 간다.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19년을 복역한 뒤 1815년 풀려난다. 그가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꿔 공장주로 나온 1823년 프랑스에선 노동자의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저임금과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 등 쌓여있던 불만은 1830년 7월 혁명으로 분출한다. 이 혁명으로 입헌군주제의 왕이 된 루이 필리프는 자신을 ‘시민왕’으로 내세우지만 점차 보수화하면서 민중의 삻은 도탄에 빠진다.
영화에서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를 비롯한 청년들과 노동자들은 7월 혁명 이후 평등사회와 투표권을 요구하며 다시 봉기한다. 1831년 리옹 봉기 사건 이듬해인 1832년 6월5일 유일하게 민중의 편에 섰던 나폴레옹 부관 출신 국회의원 라마르크가 죽자, 마리우스는 왕정을 뒤엎고자 깃발을 든다. 하지만 이 봉기는 왕당파의 진압으로 실패로 끝나, 장발장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는 마리우스를 제외하고, 그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등 8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장발장이 죽은 뒤 하늘에서 시민들편에 서는 마지막 장면은, 루이 필리프를 폐위시키고 공화정이 설립된 1848년 2월 혁명을 예고한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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