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1회> 총칼 없는 전쟁 (4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민식품의 주주총회가 열리던 날, ‘동의보감주’까지 하사하면서 목숨 걸다시피 지키려 했던 유호성 소유의 주식 10%는 어김없이 신희영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유호성과 신희영 간에 이미 법적 계약이 선행되었던 터라… 유민 회장의 눈물겨운 노력은 그야말로 베잠방이 틈으로 방귀 새어나간 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유민식품의 임원들을 지금 당장 대회의실로 집합시키세요.”

신희영 대표이사의 일갈은 날카로웠다. 부탁하는 투로 이어졌던 평소와는 달리 추상같은 호령이요, 명령이었다.

“잘 아시다시피 나는 미리 준비된 사장입니다. 내가 오늘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부터 우리 회사의 명칭을 ‘HY 훌 푸드’로 바꿀 것입니다. HY 훌 푸드… 얼마나 품위 있습니까? 유민식품이 뭐야? 촌스럽게.”

“과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신임 대표이사의 첫 번째 일갈에 감히 누가 토를 달 수 있으랴. 대회의실의 둥근 탁자에 둘러앉은 기존 임원들은 한 결 같이 딸랑딸랑! 만두를 빚으며 감탄 섞인 찬성의 뜻을 내비칠 뿐이었다.

“그럼 총무이사는 회의가 끝나는 대로 법무사에게 연락해서 회사 명칭을 변경토록 하세요. 그 다음에 바로 취해야 할 일이 뭐냐? 고지광고! 시각을 다투어서 바뀐 회사 명칭을 만방에 알려야겠지요. 알겠어요? 홍보이사!”

“네, 사장님 말씀을 듣는 동안 이미 고지광고 계획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단지 회사 명칭을 새로 알리는 선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제품과 연계시켜 광고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를테면 새로 론칭 시켜야 할 제품과 기존의 간판 브랜드를 싸잡아서…”

“좋아요. 그건 홍보이사가 알아서 하시고… 내 의견을 한 가지만 추가 시킬게요. 아무리 우리 제품이 좋아도 고객들 눈을 단번에 사로잡지 못한다면 아까운 광고비만 날릴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껏 해오던 촌스런 광고는 당장 내리고, 빠른 시일 내에 꽃미남 모델을 배경으로 한 광고를 펼치세요.”

“네? 식품회사 광고에 꽃미남 모델을… 등장시켜요?”

“요즘은 여성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세상 아닙니까? 여자가 지갑을 열어야 물건이 팔린다고요. 그러자면 여자들 마음을 사로잡는 광고가 최고지요. 여성의 눈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씩스 팩! 땀 흘리는 미끈한 육체에 씩스 팩이 돋보이는 사진 한 장이면 끝나는 일입니다. 뭘 어렵게 생각해요?”

“그래도 광고학 개론에 따르면…”

“됐네요, 홍보이사님. 홍보부장으로 미끄러지기 전에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아까 말했잖아요? 난 준비 된 사장이라고.”

“네,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순간, 두루 모여 앉은 임원들은 멀거니 천장만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술 취한 곰이 빠져나간 굴에 표독스러운 암 호랑이가 들어선 격이었다. 앞으로 임기가 몇 년이나 남아있나? 그 임기동안 모가지를 제대로 건사할 수 있으려나?

임원들은 이렇게 근심했다. 하지만 신희영도 나름대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적어도 회사의 임원들이라면 신임 대표이사의 전력쯤은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신임 대표이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식은 죽도 못 먹은 듯이 면전에서 비실거리는 임원들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과연 HY 훌 푸드 신임 대표이사 신희영의 가려운 곳은 어디일까? 제 이니셜을 따서 HY로 회사 명칭을 바꾸는 것으로 가려움증이 해소되었을까?

그녀가 진정으로 긁어주길 바라는 곳은 아들로 인한 상처였다. 만약 누군가가 광고모델로 아들 유호성을 기용하자고 했다면 그는 틀림없이 부사장으로 등용되었을 것이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