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은 사람~! 나쁘은 사람~!” 극장가에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류승룡의 바보 연기가 관객을 펑펑 울린다면, 브라운관에선 이 사람의 우는 연기가 시청자를 배꼽 빠지게 만들고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인기 코너 ‘나쁜 사람’의 형사 이문재(31)다. 지난달 초 첫 선보인 ‘나쁜 사람’은 경찰 취조실에서 용의자(이상구 분)의 딱한 사연에 형사들이 울고 마는 내용이다. 사회시스템에 짓밟히는 약자 이야기, 비루하고 슬픈 신파란 점에서 영화 ‘7번방의 선물’이나 ‘레미제라블’ 을 연상시킨다.
이문재는 “작년 겨울부터 코너를 준비했는데, 딱 맞춰서 ‘7번방의 선물’과 ‘미필적 고의’(개콘의 또 다른 코너로, 개그맨 박성광이 일용직으로 나와 부잣집에서 일하고도 일당을 받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나와서 많이 비교된다”며 “사실 ‘나쁜 사람’의 모티브는 개콘의 ‘감수성’”이라고 했다.
‘나쁜 사람’은 이문재의 아이디어다. ‘감수성’에서 장군과 졸병 사이인 개그맨 김준호와 권준호의 대사의 한대목을 듣고 아이디어를 퍼뜩 떠올렸다. “장군! 전쟁에서 싸울 병사가 없습니다!” “네 아들이라도 내보내야할 거 아니냐”, “제 아들, 이제 돌 지났습니다”라는 대사와 함께 낮게 깔리는 슬픈 음악에 그는 웃음이 빵 터졌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더 나아가 아예 주저앉혀서 대놓고 울어보자 했죠. 이상구 선배가 당시 까치산역에서 공익근무 중이었는데, ‘나쁜 사람’ 대본을 들고 갔더니 ‘괜찮다. 웃프다(‘웃기는데 슬프다’의 신조어)’고 했습니다.”
“나쁜 사람!”이란 대사는 PD와 선후배 동료 개그맨 앞에서 코너 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애드립이었다. 뭘 할까 고민하다 ‘나쁜 사람’이라며 가슴을 쳤더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코너는 ‘법’과 ‘도덕’에 관한 딜레마도 곱씹게 한다. 아이 돌 사진을 위해 금은방을 턴 가장, 고아원에 있는 동생을 납치한 형, 아버지 사업 실패로 쫓겨난 집에서 동생의 인형을 찾아오기 위해 월담한 형 등 용의자의 기구한 사연은 설상가상 강도를 더한다. “법 보다 높은 게 뭐가 있냐?” “나는 피도 눈물도 아무 감정도 없는 놈이야” 라고 큰 소리치던 형사 이문재는 처음엔 울음을 참다가 “왜? 왜?”라고 외치고, 용의자의 물건을 무참히 빼앗는 고참형사(유민상 분)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발악한다. 그의 우는 연기가 웃음 포인트다.
그는 “원래 잘 우는 편”이라며 “7번방 보면서도 그렇게(옆에 친구를 때리며) 울었다”고 했다.
그는 비극의 희극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가 출연했다 지금은 폐지된 코너 ‘있기 없기’도 비슷했다. 감옥 면회소에서 연인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옛일을 회상하며 ‘있기? 없기?’라며 말장난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좀 무거운 분위기를 깔아주고 관객을 집중시킨 다음, 탁! 웃기는 이런 방식 개그를 좋아한다”며 “하지만 개그는 행복해야한다. ‘나쁜사람’도 결국 “풀어주자!”라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했다.
실감나는 우는 연기는 또래에 비해 고생을 많이 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는 2011년 개그맨 공채에 붙기 전에 대학로 극단에서 5년을 지냈다. 극장에서 일정한 수입 없이 무대에 이불을 깔고 자고, 식권으로 끼니를 해결해가며 2년을 보냈다. 각종 방송사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만 28세까지 13번 미끄러졌다. “마지막으로 또 떨어졌을 때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서른이 다 되었는데 ‘이젠 뭐하지?’란 생각에 앞날이 막막했어요. 진짜 마지막이다란 심정으로 본 게 KBS ‘개그스타’였습니다. 인생역전한 거죠.”
그는 “대학로에서 늘 하던 말이 있다. 배가 너무 고파도 빵조차 못살 때 ‘이 때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훗날 잘되어서 ‘그 때 다시 보자’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공채 26기다. 서태훈, 정승환, 이상훈, 김혜선, 홍나영 등이 그의 동기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다 보니, 선배가 짠 코너의 캐릭터를 맡기보단 스스로 코너를 짜는데 전념했다. ‘나쁜 사람’의 배경 곡(‘냉정과 열정사이’의 OST ‘1997 spring’)을 고르기 위해 2주동안 음원 1000여곡을 듣는 등 열성을 부렸다. 이문재는 “대학로에서 밟히고 밟히다 보니까,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며 “‘어르신’ 할때 개그를 정말 많이 배웠다. 김원효 선배, 김대희 선배, 막내 작가들의 대사 톤, 연기, 아이디어를 대학로에서 배운 거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는 또 “어르신에서 ‘문재야, 너는 그래서 문제다!’란 대사는 서수민 감독님 아이디어였다”면서 “개그맨 공채시험에서 13번 떨어진 애를 붙여준 사람도, 제 이름을 처음 알려준 사람도 서 PD다. 20대 청춘을 다 날릴 수도 있었는데, 이 모든 고생의 끝을 보게 한 평생 은인”이라며 고마운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꿈이 뭐냐는 질문에 “큰 욕심이 없다. 부모님 잘 모시고, 굶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소박한 소망을 털어놓으며 “희극에 희극을 더하는 밝은 개그도 준비 중이니 기대하시라”며 웃었다.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사진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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