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5회> 총칼 없는 전쟁 (3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미운 정, 고운 정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들킨 정’이 있다는 사실은 유민 회장도 근래에 들어서야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낯 뜨거운 장면을 함께 들킨 상태에서도 정이 들 수 있다는 말인데… 유민 회장과 송유나의 정이 그와 같았다.

명색이 재벌가의 회장으로서 카마수트라의 비법에 따라 교합하다가 마누라에게 들켰으니 그 얼마나 낯 뜨거웠을까? 까짓 거, 남녀 간의 교합이야 신이 주신 욕정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홀랑 벗고 김치냉장고 속에 숨어있었으니 그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이었을까.

거기 까지도 용납한다고 치자. 배추김치 포기로 사타구니만을 겨우 가린 채, 넓적다리에서 종아리에 이르기까지 김치 국물을 줄줄 흘리며 선 채로 싹싹 빌던 장면이야말로 그 얼마나 낯 뜨거웠을까.

그 모든 낯 뜨거움을 감싸주었던 송유나를 유민 회장이 대뜸 찾아온 까닭은 이제야말로 ‘들킨 정’에 호소할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내 화류계 경력이 50년이지만, 그래도 자네가 남녀 교류 방면에서는 제일 뛰어나더군. 그래서 말인데… 잠시 후에 들이닥칠 일곱 명 사내 녀석들을 해삼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여줄 수 있을까?”

한 발 앞서 ‘유리의 성’에 도착한 유민 회장은 송유나에게 이렇게 애원했다. 내일로 다가온 유민식품 이사회에서 그들이 누구 편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경영권이 오갈 판이니… 기댈 사람은 송유나 밖에 없었다.

“우리 가게에 출근하는 예쁜 동생들이 세 명 이니까… 세 명까지는 자신 있지만 일곱 명을 어떻게 후려요?”

“안 돼! 일곱 명 중에서 누가 키를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아주 중요한 키를 가진 자가 그 중에 있단 말이야. 그러니 일곱 명 모두 다 녹초로 만들어 줘야 해요.”

“그럼 어떡해요? 남자 셋에 여자 일곱이라도 어려울 판에.”

“동생들 각자가 친구라도 하나씩 불러오면 안 될까?”

“지금요? 불과 10분 이내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요?”

“아이고… 어떻게든 해 봐.”

송유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유민 회장이 이렇게 애걸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일이 배후에 걸려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필살기라도 동원해야 마땅할 터인데…

“역시 카마수트라 비법을 활용할 수밖에 없겠네요.”

“카마수트라? 내 마누라가 들이닥치던 날 벌이던… 요가 같은 거 말이야?”

유민 회장은 새삼스레 입맛이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김치냉장고에라도 숨었기에망정이지, 만약 그 요상한 장면이 라이브 상태로 발각되었더라면 마누라 손에 궁형을 당했을 것이 확실치 않았던가.

그 다양한 형벌, 예를 들면 발뒤꿈치를 베어내는 월형, 불에 달군 구리기둥에 매다는 포락지형, 사지를 갈가리 찢는 육시, 목을 베는 참형, 창호지를 적셔 숨통을 막는 도모지 등등, 그 수많은 형벌 중에서도 하필이면 불알을 훑어내는 궁형을 당할 뻔했다는 기억에 그는 부르르 몸을 떨어야 했다.

“내가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해서 동생들에게 카마수트라 비법을 전수해 왔단 말예요. 나는 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지요. When a man enjoys two women at the same time, both of whom love him equally, this is known as the united congress. 이게 비록 남자 입장에서 한 말이긴 해도…”

“대체 뭐라고 하는 게야? 나이 들으면 도통 귀가 어두워져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문득 그녀야말로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안도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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