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7회> 바람에 맞서는 법 16
마라톤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해서 초반 수백 미터에 이르기까지는 걷다 못해 슬슬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우승하기 위한 전략을 가다듬거나 혹은 그 전략을 이루기 위하여 가상의 동반자를 지목하고 그와 보조를 맞추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몸의 컨디션을 가늠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려 10,000㎞를 달려야 하는 5개국 관통 랠리대회의 드라이버들도 심정은 마라토너들과 꼭 같았다. 출발점에서 500㎞에 이르는 구간까지는 기록을 재지 않는 이동구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 넘고, 물 건너서 사막을 달리는 과정에 겪어야 할 고통을 예견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기 위해 느릿느릿 굴러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유독 한 대, 지붕을 떼어내고 뒷좌석에 보란 듯이 골프백을 실은 노란색 폴크스바겐 티구안은 전 속력으로 전방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티구안은 4륜구동으로 SUV의 특성을 오롯이 지닌 머신이긴 하지만 숏 바디였다.
“워츠 댓?”
“와우, 라이크 키위버드!”
영어가 짧아 더 이상 받아 적을 수는 없지만, 느릿느릿 굴러가며 컨디션을 조절하던 선수들은 대충 이런 식으로 떠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키위버드란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토종 새의 이름이다, 천적이 없어서 날아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날개가 퇴화된 새. 어쩌다가 급히 뛰기라도 하려면 뒤뚱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는 작은 새다.
날개 없는 새가 앞선들 얼마나 앞설 수 있을까. 하지만 지붕을 벗겨낸 숏 바디 티구안 위에 올라 앉아 먼지바람을 날리며 앞서 뛰쳐나가는 강유리의 모습은 실로 경이롭기만 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의 따오기처럼, 노란색 오픈 카에 올라앉은 비키니 여인의 모습은 아련하기만 했다. 비포장 길을 달리는 차량대열… 먼지구름이 그 얼마나 자욱할까. 하지만 강유리는 그 자욱한 먼지 사이를 가로 세로로 누비며 선수들에게 눈도장을 찍기에 바빴다.
병아리처럼 노란 차를 모는… 빨간 비키니 아가씨는 360여대의 머신에 탑승한 700여명 선수들에게 확실히 각인되는 중이었다.
“하이, 하이, 헬로우!”
더구나 그녀는 차량 대열의 앞을 지그재그로 달리다가 다른 선수들과 눈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면서 수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 다른 선수들은? 그야말로 난리 블루스였다. 평균시속 50㎞ 정도로 달리던 그 선수들은 강유리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저마다 헬멧을 벗어들거나 창밖으로 헬멧을 흔들어 대곤 했던 것이다.
“키스, 키스! 쪽, 쪽!”
마주치는 선수들마다 손바닥 위로 키스를 날리던 강유리는… 이를테면 눈도장을 충분히 찍었을 것이라 판단한 강유리는 장차 골프 퍼포먼스를 벌이기로 예정한 ‘안칭’을 향해 최고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후호에서 첸탕강에 이르는 길엔 스틱차 밭이라도 펼쳐져 있어 심심치 않았지만 그로부터 300㎞쯤 떨어진 ‘안칭’은 그야말로 광활한 벌판일 뿐이었다. 퉁팅호와 펀양호에서 맴돌던 물줄기가 양쯔강을 타고 동으로, 동으로 내달리는 끝자락이 이른바 안칭이었다.
강유리는 그 언저리에서 골프 쇼를 벌일 예정이었다. 아마 CF 촬영을 위한 비서관들과 촬영감독, 그리고 나머지 촬영팀원들은 먼저 안칭에 도착해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촬영 준비 끝! 이제 유리 양이 할 일만 남았습니다. 우리의 호프 유호성 선수가 안칭에 도착하는 대로 슛 합니다. 이상!”
마침 촬영 팀으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안칭까지 남은 거리는 300㎞. 이제부터는 364대에 나누어 탄 랠리 선수들도 점차로 가속을 할 터이니 가급적 빨리 달려서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만 할 것이다. CF 주인공은 유호성이고, 자기는 조연일 뿐인데… 화끈하게 토플리스 차림으로 골프 쇼를 벌여서 시선을 장악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