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CJ E&M XTM 공서영 아나운서

걸그룹 활약했지만 발라드 가수와는 거리감 도전과 실패 방황의 나날속 야구 매력 빠져 고졸출신 ‘성별의 장벽’ 넘어 아나운서의 길

“승패 갈림길 진솔한 스토리 들려주고 싶어”

야구를 만난 뒤 인생이 달라졌다. 자신감이 부족했지만, 이를 넘어 ‘9회말 2아웃 대역전’의 희망도 꿈꿔보게 됐다. 아직은 ‘끝나도 끝난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도 ‘야구’였다. 스물아홉에 ‘금녀의 집’에 들어선 공서영 아나운서의 이야기다.

KBSN으로 입사해 CJ E&M의 채널 XTM으로 이적했다. 회사를 옮긴 지 1년이 채 안됐지만, 공서영(32) 아나운서는 ‘야구여신’이라 불리는 스포츠채널 여성 아나운서 중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걸그룹 출신답게 화려한 외모, 남성채널 아나운서다운 과감한 의상, 쟁쟁한 학벌의 아나운서 사이에 유일한 고졸. ‘학력의 경계’와 ‘성별의 장벽’을 허물었지만, 아직 숱한 선입견과 싸우고 있다.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꿈이 가수였어요. 고등학교 때 오디션도 보고 연습생 생활을 해오다 클레오에 교체멤버로 합류하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어요.”

스물셋, “생각보다 노래를 잘한다”는 공서영 아나운서는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발라드 가수를 꿈꿨다. 무대 위의 요정이 돼 춤을 춰야하는 걸그룹 멤버로 데뷔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10대 가수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가요계 현실에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해 클레오로 가요계에 도전했다.

녹록치 않는 생활이었다. 솔로가수로의 전향도 준비했지만 자꾸만 어그러졌다. 정해놓은 ‘하나의 꿈’이 있었기에 대학도 포기했던 20대 초반의 공서영에게 첫 번째 실패가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공서영 XTM 아나운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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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영 XTM 아나운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공서영 XTM 아나운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공서영 XTM 아나운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그 뒤로도 몇 년, 공서영은 연예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도전하다 무너지고,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방황의 날도 길었다.

그에겐 가족을 향한 부채의식이 컸다. 초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매의 뒷바라지에 주름이 깊어진 엄마와 가족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었다. 가수의 길이, 단지 상황이 맞지 않아 풀리지 않았을 뿐이지만 공서영 아나운서는 그 미안함에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 꿈이 소중하다고 다른 친구들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지도 못하는” 이기적인 딸로 있을 수는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간이 무겁게 지나고, 이젠 포기. 자신의 첫 번째 꿈을 접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야구를 만나게 됐다.

“시간 때우려고 틀어놨던 야구가 매일같이 이어지더라고요. 하루 이틀 사흘씩 보게 되니, ‘야구 안에는 인생이 녹아있다’는 그 말이 제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힘들었던 시기에 경기를 보며 다시 희망을 보게 됐어요.”

응원하던 팀이 처참히 무너지다 ‘역전의 깃발’을 뽑아들 때 “내 인생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가 찾아왔던 것이다. 희망없는 꽃밭에 살던 공서영에게 다시 찾아온 가슴 뛰는 설렘이었다. 공서영 아나운서는 그 때부터 ‘야구’를 연인 삼았다.

다시 도전, 스물아홉이었다. 2010년 공서영은 KBSN의 스포츠아나운서로 지원했다. 가수를 하다 왜 아나운서를 하냐고, 한 번 기웃거려 보는 것 아니냐는 면접관들의 냉정한 질문에 절박한 심경도 있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 어렵게 찾게된 두 번째 꿈을 향한 갈망이 면접 당시 터져나와 눈물까지 쏟았던 것이 공서영 아나운서의 입사 후기다. 당시 그는 “나 때문에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 다시 행복을 주고 싶다”고 말하며 결국 울었다고 한다.

마음고생 끝에 시작한 아나운서로의 첫 직장이지만 공서영 아나운서는 1년 6개월쯤 지나 스스로에게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그는 최희 아나운서와 함께 KBSN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2012년 여름, 야구 초짜채널로의 이적이 시작됐다. 하나에만 몰두하는 공서영 아나운서에겐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어렵고 힘든 환경이 좋았다.

공서영 아나운서의 허기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야구팬으로 시작해 밤을 새워 공부하며 야구도사가 됐다. ‘1분의 인터뷰’를 혹여라도 망치게 되는 날에 집에 돌아가 눈물을 흘릴 만큼 욕심도 있었다. 이제 공서영 아나운서는 팬들에겐 ‘여신’이, 야구선수에겐 ‘동지’가 됐다. 공서영이라는 이름에 인지도가 더해지며 XTM의 간판 아나운서로 떠오를수록 잡음과 논란, 편견은 계속됐다.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겠지만 그는 “내가 잘한다면, 내가 더 열심히 한다면 나아지지 않겠냐”고 한다.

지금 그는 야구를 만나 시작된 제2의 인생이 즐겁다. 그런 즐겁고 치열한 삶을 준 야구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이젠 공서영만의 야구이야기를 들려주기를 희망한다. “누구나 그 사람만의 스토리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의 것이 더 값지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승패가 갈리는 경기에서 그들의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