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사회 분위기도 책임
서울 중랑구의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A(18) 양은 지난 8일 손님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너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주위에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소를 한다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선뜻 고소를 하기는 어려웠다. 경찰서와 법정에서 진술을 하는 것도 엄두가 안 나고 소송 비용도 걱정이 됐다. 결국 A 양은 창피한 마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나서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가해자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데 피해자인 자신만 어려움을 겪는 게 답답하지만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충남 서산의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대생 B(23) 씨가 사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피자가게 사장은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B 씨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나체사진을 찍어 “가족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또다시 협박했다. B 씨는 “사장 협박 때문에 못 살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사건 이틀 만에 자살했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혼자 끙끙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사건이 주위에 알려질까 하는 두려움’을 꼽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안 좋게 보고 성폭력이 피해자 때문에 일어난다는 잘못된 시각까지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사건이 주변에 알려질까봐 걱정한다”며 “성폭력 가해자의 80% 이상이 아는 사람이고 주위 사람과 연결돼 있다 보니 직장이나 학교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해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성폭력을 당했을 당시의 1차 피해보다 사후에 주변 사람과 사회로부터 겪는 2차 피해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 성문화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강조되고 일상 생활에서 성폭력을 용인해온 면까지 있다”면서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피해를 사소화하는 분위기, 신고를 말리는 주위 사람 등이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폭력은 여성이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라는 시각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성폭력 신고율은 10%에 그치고, 처벌받는 가해자는 전체 성폭력 범죄자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성폭력 처벌을 무조건 강화하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없다”며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가부장적 성문화를 성찰하고 깊이 있는 인권교육을 실시해 근본적인 인식을 바꾸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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