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4회> 바람에 맞서는 법 32
유민 회장이 그렇게 뒷목을 부여잡기 두 시간쯤 전, 소파 밑에서 블라우스 단추를 찾아 주먹 안에 쥐고 있던 신희영은 두 가지의 과감한 결심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 더 이상의 모델은 필요 없어. 박박진진으로 끝이야.’
이것이 첫 번째 결심이었다. 박박진진의 박력 넘치는 행동을 보건대 더 이상 망설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불과 0.1mm 두께의 블라우스 한 장을 맞대고 함께 엎드려 있었으므로… 결심하기는 오히려 쉬웠다. 아직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2의 모델후보 변강호가 자연스럽게 탈락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9시 뉴스 CF 광고도 박박진진을 모델로 즉석에서 제작하는 거야. 원래 즉석 불고기가 더 맛있는 법이거든.’
이것이 두 번째 결심이었다. 사실 요 며칠 동안 신희영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유민 회장과의 광고 싸움에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방송사에 직접 찾아가 9시 뉴스 직전광고를 편성받아 왔지만 미처 CF를 제작하지도 못한 처지이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내일부터 CF를 걸기로 하고 아직 CF 제작도 못했으니 어떡하나요? 방송사에 물어야 할 배상금이 적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몰라. 아무리 급해도 회사 이미지 광고를 하는 마당에 대충 제작할 수는 없잖아요? 배상금이 얼마인지나 알아보세요.”
홍보이사와 이렇게 걱정을 하던 중이었는데… 이제 생각하니 필요 없는 걱정으로 날밤을 새운 꼴이었다. 과연 신희영이 두 가지 결심을 대번에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Black is beautiful… 검은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소파 밑에 엎드려서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중국 공안에게 잡혀 있던 강준호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난 몰라, 그냥 집어넣으라고 해요.”
그 말을 회장님의 어명으로 알아들은 박박진진은 또 이렇게 대답했지.
“그럼… 불경스럽지만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회장님.”
명령에 따라 행해지는 불경스러운 짓이란 무엇일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박박진진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신희영의 스커트를 박력 넘치도록 허리 위로 걷어붙였을 것이다. 스커트만 걷어붙였을 리는 없을 터.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띠를 풀고 한껏 독이 오른 지겟작대기를 꺼내었을 텐데….
엎드린 채로 고개를 꼬고 흠칫 뒤를 돌아보던 신희영은 불현듯 그의 지겟작대기를 보게 되었을 것이고, 순간적으로 아! 검은 것도 진정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깨우쳤을 것이란 말이다.
영조 39년, 서기 1763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인겸은 ‘일동장유가’라는 여행기를 후세에 남겼다. 3.4조로 쓴 가사 형태로서 8200여 구에 달하는 그 시구에는 이를 검게 물들이는 일본인들의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보면 이를 검게 물들이는 것이 일종의 화장술이었다고 한다. 화장이란 아름다워지기 위한 기술 아닌가.
일본말로는 ‘하구로’, 한자로 쓰자면 ‘치흑(齒黑)’이라 해야 할 이 풍습을 새겨보면 필시 검은 것도 아름답게 여겨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흑인 중에도 아름다운 여인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검기 때문에 더욱더 아름다운 경우도 보게 된다. 아름다움을 향한 도착 증세라고 볼 수만을 없을 것이다. 보나 마나 올여름에도 해변에 누워 몸을 검게 태우려고 하는 아가씨들이 엄청 많을 테니까.
어흑, 어흑! 소파 밑에 주먹을 불끈 쥔 채로 엎드려 교성을 질러대면서도 CF 광고를 기획하는 신희영은 타고난 사업가였다. 그래, CF가 별거냐? 박박진진처럼 멋진 청년이 언더웨어 차림으로 워킹하는 모습을 그대로 촬영하는 거야. 그리고 자막이나 한 줄 깔면 훌륭한 CF가 되는 거지 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자막내용이 바로 Black is beautiful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은 다 알거야… 하는 배짱이었는데, 저칼로리 식품 광고로는 아무래도 젬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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