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3회> 바람에 맞서는 법 32

“이거 CF가 뭐 이래? 내가 준 콘티는 어떻게 된 거야?”

9시 뉴스를 30여 분 남겨놓고 CF 영상을 처음으로 확인한 유민 회장은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애초 콘티대로 촬영되었다면 첫 화면에 유호성이 모는 1974년산 치타가 늠름하게 등장해야 마땅했다. 황토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치타가 클로즈업되고, 드디어 유호성의 땀 맺힌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게 되면….

유민 회장은 그런 장면을 곱씹어 상상하고 있었다. 1974년산 치타는 비록 거성그룹의 간판 머신이지만 그 머신을 모는 주인공이 더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그 주인공이 누구냐? 내 멋진 아들… 유호성이 아니냐.

“어째 시작부터 시커먼 군인 녀석들이 떼로 나서냔 말이야?”

열을 받아서인지 어느새 콧김이 뜨끈뜨끈해지더니 현기증마저 몰려왔다. 게다가 중국에 가 있는 비서들과는 당분간 전화통화도 되지 않을 것이란 연락이 이어졌다.

“이 작자들이 일을 망쳐놓고 어디로들 샌 거야? 이봐, 홍보부장! 화면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라고.”

화면을 다시 돌려봐도 마찬가지였다. 그토록 자랑스러운 아들 유호성은 화면 저 구석에서 1974년산 치타에 기대 선 채로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을 구경하냐고?

“저거… 비키니 입은 여자가 뭐하는 거야? 골프 치는 거야? 황토벌판에서? 어… 어… 젖가슴은 어째서 클로즈업시킨 거지?”

볼수록 가관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황야의 무법자’ 끝 장면처럼 화면 속에선 황토먼지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불고, 그 먼지가 사라질 때쯤 해서 느닷없이 클로즈업된 장면이 여자 젖가슴이라니….

“브… 브래지어가 벗겨지고 있습니다, 회장님.”

“나도 보고 있어, 이 사람아. 조용히 하라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였다.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는 멋진 자세로 드라이버 샷을 날렸는데… 스윙의 마무리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녀의 브래지어가… 어깨 끈도 없이 원터치 매듭으로 되어 있어서 한번 풀리면 바닥으로 흘러내릴 수밖에 없는 그녀의 브래지어가 스르륵 미끄러지려는 찰나였다.

“아이고! 대단한 그… 글래머….”

유민 회장의 추상 같은 호통을 듣고도 홍보부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긴, 미스월드 뺨치는 미모의 여인이 아마조네스 뺨치는 반나체 차림으로, 아니카 소렌스탐 뺨치는 골프스윙을 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세 번이나 뺨을 치는 중에 은근히 드러나는 속살이 애마부인 뺨치는 글래머라니!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다음에 배경도 없이 5초 동안이나 이어지는 자막 내용이었다.

<가죽제품 옷은 과감히 벗어라! 유민그룹은 동물 보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첫 문장은 커다란 글씨로, 두 번째 문장은 잔잔한 글씨로… 화면 아랫단으로부터 둥실둥실 떠오르는 자막을 보고 있자니… 아이고, 뒷골이 당길 지경이었다.

“이제 보니 저 아가씨가 입고 있는 브래지어가 가죽제품입니다, 회장님.”

“글쎄, 나도 보고 있잖아, 이 사람아. 조용히 좀 하라고!”

“…….”

“그나저나 이걸 어쩌지? 이 CF 촬영물을 방송국에 보내야만 되는 거야?”

“시… 시간이 없습니다, 회장님. 10분 내로 방송사에 쏴 줘야 합니다.”

유민 회장은 뻣뻣해져 오는 뒷목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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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