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고령화가족’ 등 매일 지지고 볶으며 으르렁대도 때 되면 밥상머리에 모여앉아 같은 찌개냄비에 숟가락 담그는 食口란, 그런 것…

‘콩가루집안’ ‘콩가루가족’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서 ‘콩가루’의 뜻을 찾아보면 콩을 잘개 부수어 만든 가루라는 의미 외에 ‘한 집단 구성원 간 상하 질서가 흐트러지거나 유대관계가 깨어져 버린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정의도 덧붙여져 있다. ‘콩가루집안’이나 ‘콩가루가족’이라는 말은 단합되지 않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각자가 뿔뿔이 흩어져서 도저히 한 가족이라고 이를 수 없는 집안을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영어에는 ‘벽장 속의 해골(skeleton in the closet)’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있다. 보통 다른 이에게 내보이기 싫은 수치스러운 가족의 비밀을 뜻한다. 우리식 표현과 서양의 관용어를 더하자면 “ ‘콩가루집안’은 대개 ‘벽장 속의 해골’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벽장 속의 해골’은 보통 성(性)과 관련된 것, 서구식으로 표현하자면 ‘섹스 스캔들’이 많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경향 중 하나가 ‘콩가루집안’을 그린 작품의 계보다. 전근대적인 가족제도와 도시사회 속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원조’ 격이라 할 만한 작품이 2003년 작인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다. 아버지가 죽자마자 노령의 어머니는 숨겨놨던 연인과 대놓고 결혼하겠다 하고, 운동권 출신 인권변호사인 아들은 내연녀와 ‘통정’하며, 며느리는 이웃집 고교생 소년을 꼬드겨 ‘맞바람’을 피운다. 2006년엔 김태용 감독이 ‘가족의 탄생’을 통해 구성원이 기괴하게 조합된 ‘가족’을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20대의 남자가 50대나 됐을 어머니뻘의 연상녀와 연애를 하고, 어엿한 유부남과 살림을 차린 ‘헤픈 어머니’와 그의 딸이 티격태격 살아간다.

2007년 개봉한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는 피로 맺어졌지만 남다른 ‘비밀’과 결격사유를 가진 가족이 주인공이다. 거의 낙오자 군단같은 가족 구성원 속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던 ‘고개숙인 남편이자 허수아비 아빠’가 인생 최대의 섹스 스캔들 주인공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2006년 작인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사실 ‘콩가루집안’의 이야기였다. 홀로 딸을 키우는 ‘모자란’ 장남과 말만 번지르르한 운동권 출신 실업자인 차남, 양궁선수지만 굼뜨기 짝이 없는 막내딸이 한강의 괴물을 상대로 사투와 촌극을 벌였다.

작가 천명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령화가족’(9일 개봉)은 한국 ‘콩가루가족영화’의 ‘적통’을 잇는 작품이다.

일단 구성원을 보자. 장남인 44세의 한모(윤제문 분). 과거 건달, 현직 백수로 해가 중천에 떠야 무릎나온 추리닝 바지춤에 손을 넣고 긁적이며 일어나는 한심한 인생이다. 홀어머니집에 얹혀살고 있다. 둘째아들인 40세의 인모(박해일 분). 집안의 유일한 대졸자로 한때 가족의 자랑거리였으나 데뷔작이 쫄닥 망한 뒤로 오갈 데 없게 된 영화감독이다. 바람난 아내로부터 이혼 요구를 받고 있으며, 결국 자취방의 월세가 밀려 어머니와 형이 사는 집으로 들어온다. 마지막 동거인으로 합류하게 된 것은 35세의 막내여동생 미연(공효진 분)이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여중생 딸(진지희 분)을 앞세우고 어머니집을 찾은 미연은 새 남자친구와 세 번째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 중. 어머니(윤여정 분)는 졸지에 과년한 자식과 손녀까지 맡게 됐지만, 매일 저녁 고기를 구우며 가족을 걷어먹인다.

실패한 인생이 머리를 디밀고 다시 돌아왔으니 집안이 편안할 날이 없다. 어머니는 강박증처럼 매일 삽겹살을 사다가 불판을 피우지만 정작 술자리 안주는 서로에 대한 비난과 경멸이다. 가족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온갖 욕설과 조합 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이어진다. 결국 참다 못한 손녀가 가출하면서 이 집안에 꼭꼭 숨겨졌던 ‘벽장 속의 해골’, 즉 각자 출생의 비밀과 어머니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한 마디로 답 안 나오는 콩가루집안의 막장드라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신가. ‘고품격 가족’이든 ‘콩가루집안’이든 한가지인 것은 우리에게 가족이란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매일 밥상머리에 모여앉아 같은 찌개 냄비에 숟가락을 담그는 ‘식구’라는 것이다. 혈연공동체 이전에 밥상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령화가족’에서 어머니는 오늘도 삼겹살을 굽고, ‘괴물’의 모자란 아빠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소년에게 밥을 먹이며, ‘좋지 아니한가’에서 ‘자식들의 치욕’이 된 아빠와 ‘막돼먹은’ 아들 딸이 다시 한번 밥상머리에 모여앉는다. 그러니 한국영화 속 ‘콩가루집안’은 이렇게 말한다. ‘집나간 가족들이여 돌아오라, 밥차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