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병국ㆍ석지현 기자] 공무원 필기시험을 세달 가량 앞둔 지난 3일 새벽 5시께 서울 노량진 공시(공무원 시험) 학원가.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들 사이로 온기가 피어오른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온기를 쫓아 가방을 짊어진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졸린 눈을 비비며 컵밥집을 찾은 조현아(26) 씨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능숙하게 메뉴를 골랐다. “일찍 자리 맡으러 나왔어요. 늦게 가면 교실 뒤 문쪽에 않아야하거든요. 문쪽은 사람들이 들락거려서 불편하거든요.” 주문한지 오래지않아 컵밥을 받아든 조 씨는 서둘러 학원으로 향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가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오래다. 올해 서울시 공무원 임용시험의 경쟁률은 87.3대 1. 일반행정 9급에는 668명 모집에 7만9910명이 응시해 119.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산9급의 경우 2명 모집에 1320명이 응시해 66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쯤되면 사법고시, 행정고시 못지 않다.

수험생들은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새벽, 꿈으로 무거워진 책가방을 지고 노량진을 찾는다. 그리고 가벼운 지갑이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컵밥을 집어든다. 컵밥의 가격은 2000~3000원 사이. 불고기, 김치참치, 날치알밥, 베트남쌀국수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고 1분을 쪼개 생활하는 수험생들에겐 값싸고 먹기 편하고 다양하기까지 한 컵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한 끼가 된다.

직장을 그만두고 최근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는 김정구(31ㆍ가명) 씨 역시 4시께 성수동에 있는 집을 나서 컵밥집을 찾았다. “3년간 영업사원으로 일했어요. 사람들 만나는 스트레스, 실적압박을 많이 받았죠. 내 삶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요. 공무원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반 직장보다는 더 낫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더 늦기 전에 한 번 도전해보자 마음 먹었어요.″

참치김치를 주문한 이형기(29) 씨는 올해 안에 공부를 끝내는 것이 목표다. “딱 3가지만 해요. 밥먹고, 잠자고, 공부하고. 원래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부모님 걱정도 덜 시켜드려야 되고. 얼른 자리잡아야죠.” 10분만에 참치김치밥 한 그릇을 다 비운 이 씨는 서비스로 제공되는 콜라 한 잔을 비우고 급히 자리를 떴다.

컵밥집의 주 고객이 수험생들이다 보니 이들을 먹여온 컵밥집 아주머니의 마음은 수험생을 둔 부모의 마음이 됐다. 장사한 지 15년이 됐다는 김점례(62ㆍ가명) 씨의 손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바쁘게 움직였다.

″안쓰럽지. 난 몇 년간 이렇게 장사하면서 익숙하니까 새벽에 나오는 게 어렵지 않지만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겠어. 더 따뜻한 밥을 만들어 주는 수 밖에. 오래 하다 보니 단골이 많아. 찾아올 때마다 여기를 빨리 떠나라 떠나라 하지. 그 아이들이 지금은 다 공무원이 됐어. 전국에 내가 해준 밥 먹고 큰 경찰, 공무원이 쫙 깔렸어. 가끔 내가 해준 밥이 그립다며 인사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았다. 저멀리서 푸른 빛을 띠던 새벽은 노량진 일대를 훤히 밝혔다. 인도를 가득 메웠던 수험생들 대부분은 학원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는 출근 길의 직장인들로 가득찼다.

‘합격의 영광을 그대에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합격을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