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9회> 바람에 맞서는 법 (47)
“아가씨, 어찌 된 일입니까? 혹시 성폭행이라도….”
“성폭행이라뇨? 그런 일은 전혀 없어요.”
“그럼, 저놈이 어째서 옷을 홀랑 벗고… 어라? 아가씨가 저놈 옷을 빼앗아 입었나요? 아가씨가 저놈을 혼자 제압했단 말입니까?”
“아이, 참. 설명드리기 복잡하네요.”
“하여간 다행입니다. 아가씨가 납치되는 걸 보고 허겁지겁 뒤쫓아왔지 뭡니까. 아가씨는 이제부터 경기가 끝나는 날까지 우리 전속모델이란 말입니다. 행여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지요. 정말 괜찮아요?”
비서들, 감독, 그리고 촬영팀원이 왁자지껄하며 떠드는 동안 강유리는 나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비록 팬티만 걸친 채 조수석에 쪼그려 앉아 있지만… 저 젊은 병사야말로 거성의 드라이버 유호성을 암살하러 온 특공대원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지만, 무작정 그 사실을 촬영팀에 고자질하기도 싫었다. CF 감독이 수시로 국내 방송사 직원이나 기자들과 통화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 온 나라가 떠들썩해질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면 랠리 경기가 엉망이 되고, 매일 밤마다 9시 뉴스에 모델로 등장하는 것도 끝장나겠지. 중국 땅에서 비키니만 입고 골프 쇼를 벌인 것이 수포로 돌아갈 텐데, 미쳤어? 찌르게?
“별일 없어요. 단순한 성희롱이 있었을 뿐이에요. 어쨌든 공안에게 끌고 가서 혼쭐은 내야겠지요?”
강유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심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일단 공안을 찾아가서 비밀리에 수사해줄 것을 전제로 암살 의도를 밝힐 예정이었다. 중국 공안도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떠들어봐야 국제적인 경기를 망치기만 할 테니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공안에게 끌고 가자고는 했어도 마음 한구석은 영 개운치 않았다. 왠지 팬티만 입고 쪼그려 앉은 그 병사가 측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착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제 옷을 서슴없이 훌훌 벗어주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냥 없던 일로 처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망설이다간 유호성 오빠가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빨리 공안에게 가야 해요. 누구 함께 가줄 사람 없어요?”
그러자 사방에서 “내가 가야지”, “나도 갑시다” 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한심한 인간들 같으니. 하긴… 무거운 기자재 메고 벌판을 헤매며 촬영이나 하는 것보다야 비키니 미녀를 따라다니는 것이 훨씬 좋겠지.
“공안에게 넘기려면 상하이까지 되돌아가야 합니다. 최소한 열 시간은 거꾸로 가야 한다고. 그러니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지요. 가는 동안에 내일 방영될 CF를 찍어야 하니까 말이야. 안 그래요?”
“그럼 다 같이 상하이로 갑시다.”
비서들과 어설픈 3류 감독, 촬영팀원은 즉석에서 이렇게 합의했다. 어차피 CF 촬영의 콘셉트는 엉망이 돼버렸으니… 에라, 모르겠다. 모델 꽁무니나 쫓아다니면서 아무거나 찍지 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일렬종대로 줄지어 상하이로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3류 감독은 내일 밤 9시 뉴스 전에 방영될 CF 장면을 구상하고 있었다. 어젯밤 방영된 CF 주제는 뭐였더라? ‘가죽제품 옷은 과감히 벗어라!’였지?
“천재 비서님, 내일 CF 콘셉트는 뭐로 승부를 걸어야 할까요?”
“뭐가 걱정입니까? ‘밀리터리 룩’으로 가야지요. 저 모델이 알몸 위에 군복 걸친 거 보셨지요? 섹시하잖습니까?”
랠리 경기를 빙자해서 패션 촬영을 해? 좀 찝찝하긴 했지만, 그나마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