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09:30 한남동 제일기획 사옥 인근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본격 시작됐던 지난 8일. 이태원의 아침은 한산했다. 밤새 불을 밝혔던 네온사인은 이미 꺼져 있었고, 흥겨운 음악도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았다. 바닥에 뿌려진 전단지를 치우던 환경미화원 A 씨는 “오늘은 그나마 괜찮은데 주말 다음날에는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온다”고 말했다. 출근 시간에 접어들자 한남동 제일기획 사옥으로 자유로운 복장의 직장인들이 하나둘 들어갔다.

09:30~12:00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이슬람 성원으로 가는 길목엔 이슬람 식료품 가게, 음식점, 책방 등이 가득 들어차 이국의 풍광을 자아냈다. 이날은 ‘라마단’이 종료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 ‘이드 알 피트르’가 열렸다. 이슬람 성원 관계자는 “‘이드 알 피트르’는 무슬림들에게 우리나라의 추석과도 같은 큰 명절”이라고 말했다.

예배가 시작되는 오전 10시 무렵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의 무슬림들이 성원 앞을 빼곡히 채웠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슬람 전통 복장을 착용했고, 규율에 따라 남녀가 따로 예배를 보았다.

이태원에서 케밥 가게를 7년째 운영하고 있는 터키인 카야 핫산(31) 씨는 “이태원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해 살기 편하다”며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 이슬람 음식점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좋다”고 소개했다. 종교적 이유로 음식에 제한이 많은 무슬림들에게 이태원은 ‘오아시스’ 역할을 했다.

12:00~13:00 해밀톤호텔 뒤 세계음식거리

정오에 이르자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거리에는 브런치를 먹으러 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이지현(26ㆍ여) 씨는 “여성들에게 일단 이태원은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은 장소로 통한다”며 “세계 음식이 한데 모인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가했던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 손을 맞잡은 연인, 브런치를 찾는 젊은 여성, 어머니를 모시고 온 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13:00~17:00 경리단길

경리단길은 육군중앙경리단에서 하얏트 호텔까지 이어지는 길을 가리킨다. 최근 이곳에는 소소하고 분위기 좋은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영역이 넓어졌다. 복잡하고 화려한 이태원과는 달리 경리단길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그리스 음식 전문점 ‘엘 그레코스’를 운영하는 엠제이(30) 씨도 경리단길의 매력으로 아늑함과 편안함을 꼽았다. “이태원은 시끄럽고 화려한 인테리어의 가게들이 많은 반면 이곳에는 편하게 들러 가볍게 한잔 할 수 있는 따뜻한 가게들이 많다”고 자랑했다.

인근 주민인 송지연(31ㆍ여) 씨는 경리단길을 “현대의 한국과 과거의 한국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개발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주택가와 시장골목, 독특한 가게들이 함께 모여 있는 탓이다. 그는 “특히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가 없어 좋다”고 했다.

17:00~20:00 이태원역, 트랜스젠더 클럽 골목

9일 주말을 맞은 이태원에 어둠이 깔리자 이태원역 인근 거리는 내외국의 청춘들로 가득 찼다. 대학 친구들을 만나러 나온 정태호(29) 씨는 “이태원은 서울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친구들과 모이기 딱 좋다. 무엇보다 예쁜 여자 들이 많다”며 웃었다.

골목에는 트랜스젠더 클럽들이 간판 불을 밝혔다. 클럽 종업원들은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가게 앞으로 나와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들은 여성보다 더 완벽한 여성의 모습이었고, 인종과 남녀노소가 뒤섞인 이태원에서 자연스런 하나의 구성원으로 녹아들어 있었다.

20:00~22:00 꼼데가르송길, 소월길

제2의 가로수길이라고 불리는 한남동 꼼데가르송길로 향했다.

이태원역에서 제일기획 사옥을 지나 한강진역으로 조금 걷다보면 꼼데가르송 매장과 리움미술관, 세련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들어선 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이태원 중심과 또 다르다. 경리단길의 한적함이 소박한 것이었다면, 꼼데가르송 길의 한적함은 세련된 것이었다.

한강진역 1번 출구 근처 하얏트 호텔과 남산 소월길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에 올랐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한강진역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멀리 보이는 남산동 주택들과 발 아래 현대적인 건물들이 어우러진 야경은 이질적으로 아름다웠다.

22:00~24:00 이태원역

밤이 깊어지자 이태원 유명 클럽 ‘비원’ 앞에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취기가 올라 있었다. 칵테일을 마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는 이상미(25ㆍ여) 씨는 이태원의 매력에 대해 “자유분방한 느낌이 좋다. 독특한 사람들도 많고 외국인들도 많아서 내 개성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를 라운지 바로 인도했다.

안에 들어서자 외국인부터 중년 여성, 젊은이들까지 흐느적 몸을 흔들며 이태원의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 여행 중이라는 브라이언 프롬(26ㆍ미국) 씨와 다니엘 살리나스(27ㆍ스페인) 씨는 편의점 앞에 앉아 소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은 서양인들이 많아 한국 같지 않다. 좀 즐기다 서울의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 역시 기자를 클럽에 같이 가자며 소매를 잡아끌었다. 엉킨 사람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지웅 기자ㆍ김훈일 인턴기자/plato@heraldcorp.com

사진=김명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