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기능 넘어 사회적 기능으로…긍정적 변화 이끄는 ‘공공디자인의 힘’
염리동 골목길·성동구 벽화·마포대교… 범죄예방 환경설계 ‘셉테드’로 환경 변화
우범지역·학폭학교 멍에 벗고 호감 높여 아파트 지하주차장·생명의 다리 등 확산
디자인이 미적 기능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 디자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착한 디자인,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DSRㆍDesign’s Social Responsibility)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디자인은 범죄와 자살 등을 줄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범죄를 예방하는 환경설계 이론 ‘셉테드’(CPTEDㆍ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에 디자인을 접목시켜 ‘범죄예방 디자인’을 선보였다.
셉테드는 도시가 설계되는 단계에서 진행되는 범죄예방 디자인인 반면, 서울시의 ‘범죄예방 디자인’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도시에 적용하는 범죄예방 디자인이다. 수용자들의 거부감을 없앤 디자인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해 10월 옷을 갈아입은 마포구 염리동이다. 서울시는 재개발이 예정돼 낙후되고 우범지역이었던 염리동을 무서운 골목길에서 걷고 싶은 산책길로 탈바꿈시켰다.
좁고 어두워 공포감을 조성했던 길에 밝은 색을 칠하고 조명을 달았다. ‘소금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봇대에는 숫자를 달아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경찰에 신속하게 위치를 알릴 수 있게 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금지킴이집’도 만들었다. 노란색 대문에 사인 조명과 비상벨을 달아 비상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을 곳곳에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안전성을 높이고 미혼여성들이 사는 다세대주택에는 흔적이 잘 지워지지 않는 형광페인트를 칠했다. 범죄심리를 위축시키기 위해 골목의 낡은 벽에는 밝은 느낌의 벽화를 그렸다.
주민들은 이 같은 범죄예방 디자인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서울시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염리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개월 사이 주민 자신과 가족 대상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각각 9.1%, 13.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지구대 신고 전화도 30%나 급감했다. 반면 주민들의 동네에 대한 애착은 1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강서구 공진중학교에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범죄예방 디자인을 적용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거나 흰색 또는 회색이었던 교실과 복도를 채도가 높은 색과 그림으로 꾸미고 학교폭력과 흡연 장소였던 사각지대에는 댄스 무대, 암벽등반장, 샌드백 등을 설치하고 폐쇄회로(CC)TV를 달았다. 학생들은 새롭게 바뀐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풀며 인식도 달라졌다. 범죄예방 디자인을 도입한 후 무질서 인식은 7.4%, 범죄 두려움은 3.7% 줄어든 반면, 학교 시설물에 대한 호감도는 27.8% 상승했다.
삼성생명과 서울시가 ‘자살대교’로 불리던 마포대교를 ‘생명의 다리로’ 변신시킨 것도 디자인이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예다.
지난해 9월 공개된 생명의 다리는 보행자의 움직임을 따라 다리 난간에 설치된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고 일상과 생명의 소중함,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발걸음을 돌리도록 하고 있다. 올해 6월에는 공모 이벤트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글과 사진을 뽑아 다리를 새단장했다.
“3년 전 걱정은 기억나? 1년 전 걱정은? 6개월 전 걱정은? 지금 그 걱정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바람 참 좋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죠. 너 자신을 알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아들의 첫 영웅이고 딸의 첫사랑인 사람. 아내의 믿음이고 집안의 기둥인 사람. 당신은 아빠입니다” 등 정감 있는 문구로 보행자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다.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달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건축물 범죄예방설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지하주차장에 비상벨을 설치하도록 했다. 건설사들은 조명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한편 밝은 색과 그림으로 안전성을 제고하고 있다.
범죄예방 디자인을 일상생활에 적용한 사례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시는 영등포구 대림동, 도봉구 도봉동, 구로구 개봉동 등 다가구주택 밀집지역 열 곳에 범죄예방 디자인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에는 가로등에 비상벨을 설치하거나 주택과 주택 사이 공간에 외부인 출입통제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마포대교에 이어 두 번째로 투신 사고가 많은 한강대교는 ‘제2의 생명의 다리’로 새롭게 태어난다. 한강대교 생명의 다리는 유명 인사들이 남긴 희망과 힐링의 메시지로 구성될 예정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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