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이브’(감독 정연식)에서 주인공은 연쇄살인범에게 자식과 남편을 잃은 여인(김선아 분)이다. 그녀는 가해자에게 처절한 복수와 응징을 하기 위해 나선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영화가 줄곧 우려먹은, 닳고 닳은 설정이지만 ‘더 파이브’는 흉악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당위성을 호소하는 영화가 아니다. 승부수와 노림수가 다른 데 있다. ‘누가 왜 복수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으로 복수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복수의 이쪽 편에는 육체적ㆍ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사람이 있다. 자신 또한 연쇄살인범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고 휠체어를 탄, 힘없는 여인이다. 그녀가 달려가는 저쪽 끝에는 살인에 관한 한 ‘절대자’의 경지에 올라선 ‘사이코패스’가 있다. 그는 지능과 육체적 능력, 사회적 지위가 막강한 남자(온주완 분)다. 조건으로 보자면 일대일의 복수와 응징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장기 이식이 필요한 자들을 조력자로 모은다. 추적ㆍ침투ㆍ체포의 전문가와 마지막으로 ‘수술’을 담당할 의사다. 그래서 계획을 완결지을 주인공 자신을 포함해 복수를 결행하는 데에 필요한 숫자는 다섯. 영화 제목이 ‘더 파이브’인 이유다. 여기서 주인공의 직업(부업)은 도미노전문가다. 복수의 ‘최후 한 수’ 또한 도미노의 마지막 도막을 쓰러뜨리듯 둬진다. 이 영화를 숫자로만 표현하면 처음 주인공이 어린 딸과 남편 등 가족과 이뤘던, 가장 행복하고 완전한 숫자는 ‘3’이었다. 그런데 가족 2명을 잃고 주인공 홀로 남는다(3-2=1). 그녀는 가해자와 대결하기로 한다. 복수와 대결의 드라마를 이루는 데에 최소로 필요한 인물은 둘이다(1+1=2). 그러나 평등한 일대일 대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조력자 4명을 모아 다섯 명을 만든다(1+4=5). 그런데 왜 ‘다섯’일까.
영화의 숫자는 기묘하리만큼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더 파이브’에서 주인공은 홀로 살아남는다. ‘1’은 고독의 숫자이자, 생존을 의미하는 수다. 지난 7일 개봉한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영화 ‘올 이즈 로스트’는 1인극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로버트 레드퍼드 단 한 배우만 등장한다. 대사 또한 영화 초반부 몇 문장으로 이뤄진 독백을 빼면 외마디의 욕설 ‘f**k!’가 전부다. 인도양에서 홀로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하던 한 남자가 표류 중인 선적 컨테이너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과정이 1인극임에도, 빼어난 긴장감으로 그려진다. ‘그래비티’에선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샌드라 불럭의 1인 생존기가 펼쳐진다. 이 드라마엔 적도 없고, 방해자도 없다. 자연 혹은 우주 그리고 저 자신과 싸워야 한다. 숫자 ‘1’은 결국 인간은 함께 살아가지만 홀로 죽음을 맞는다는 것, 가장 큰 적은 자기 안의 고독과 절망ㆍ공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127시간’에서 바위틈에 팔이 끼여서 홀로 고립된 조난자도, ‘베리드’에서 어느 날 이라크의 깊은 땅 밑 관 속에 갇혀버린 남자도 세상 어느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2’는 동반과 대적, 사랑과 적대, 우정과 대결이 이뤄지는 최소한의 숫자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존재가 끼어들면 관계의 양상이 비로소 복잡해진다. ‘3’은 질투와 배신, 음모가 시작되는 욕망의 숫자이자, 끝이 시작이 되는 ‘변증법’의 숫자다. ‘어머니’를 두고 아들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독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도 ‘3’에서 빚어지는 드라마다. 한 사람이 어느 대상을 욕망할 때에는 항상 타인의 욕망이 개입한다. 즉, 내가 욕망하는 것이 실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라는 프랑스 문학비평가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불린다. ‘4’는 시작과 끝을 갖는, 하나의 순환을 의미하는 ‘기승전결’의 숫자이자 사계, 곧 ‘춘하추동’의 숫자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마이클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을 안 떠올릴 수 없는 숫자.
그럼 ‘5’는 무얼까? 동양철학에선 화ㆍ수ㆍ목ㆍ금ㆍ토가 세상을 이루는 다섯 가지 물질이라고 봤으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철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물ㆍ불ㆍ흙ㆍ공기ㆍ에테르)처럼 5원소로 나누길 즐겼다. 영화 ‘제5원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 손은 다섯 손가락이다. 아마도 ‘다섯’은 잘 분할되고 조화된, 기능적으로 가장 완전하게 느껴지는 숫자가 아닐까. ‘독수리 오형제’처럼 말이다. ‘식스 센스’ ‘세븐’ ‘8과 1/2’ ‘나인’ ‘10분’ ‘오션스 일레븐’ ‘12 몽키스’ ‘13일의 금요일’ ‘14데이즈’ ‘15분’ ‘식스틴 블럭’ ‘17어게인’ ‘일팔일팔’ ‘19번째 남자’ ‘이공’…. 숫자를 아예 제목으로 한 영화조차 이렇게 많은 것은 숫자, 그 안에 인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