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5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26

랠리 카들이 선두를 다투며 지나간 신압록강대교 위에는 자동차 타이어가 짓무르면서 생겨난 푸른 연기가 자욱했다. 수백대의 머신이 달려 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머신들이 정확히 대교의 중간지점에 이르렀을 때, 평생 드리워져 있을 것만 같던 철조망 바리케이드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북한의 국경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의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꿈에서나 볼 수 있을 감격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공영방송의 기자가 울먹이며 중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함께 중계를 하던 ‘조선중앙TV’ 기자들과 ‘만수대TV’ 기자들도 목소리를 높여가며 보도에 열을 올렸다. 중국에서 파견 나온 기자들, 유럽의 기자들, 남미, 호주, 아프리카 기자들까지 서로 아우성치며 보도를 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었지만 북한 TV에서 이 모습을 생중계한다는 사실이 더욱 획기적이었다.

랠리 카들이 멀리 사라지자 그동안 대교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던 클래식 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대에 수백억원씩이나 하는 명품들을 촬영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보도기자들은 또다시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옵네다. 강유리 선수! 꼴푸공을 한 번만 더 날려보시라요. 이번엔 압록강다리 한가운데에서 중국을 향해 한 번 날리고, 그 다음엔 조선을 향해서 또 한 번 멋지게 날리시라우요.”

“그럴까요? 참, 이번엔 유호성 선수도 함께 날려요. 어때요?”

“좋지요. 그럼 둘이서 통쾌하게 드라이버샷을 해볼까요?”

수많은 군중과 수많은 중계카메라가 운집한 가운데 강유리와 유호성은 드라이버샷을 날릴 준비에 들어갔다. 강유리는 1928년형 ‘메르세데스벤츠 680S’의 지붕을 밟고 올라섰으며, 유호성은 그 뒤를 따르던 1938년형 ‘롤스로이스 레이스’의 지붕을 밟고 올라선 모습이었다.

“쉭~ 따악!, 쉭~ 따악!”

한 대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명차의 지붕을 밟고 올라선 채 호쾌하게 드라이버 샷을 날리는 그들의 모습은 전파를 타고 70억 지구인에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기쁜 순간에…강유리는 울컥 감정이 북받치고야 말았다.

여태까지 내가 찾으려 애쓴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내가 움켜쥐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모두 흘러가는 구름과 같았다.

공은 멋지게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수많은 군중이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 환호성마저도 곧 허공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란 생각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 문득 환호성을 지르는 군중 맨 앞자리에 서있는 예원희와 현성애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예쁜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런데…하필 이 순간에 어째서 매니저 백광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백광돌의 모습이.

욕심과 질투와 아집으로 가득 찬 세상에 소용돌이가 세차게 몰아치고 나면 폐허만이 남겠지. 그동안 애써 이루려던 꿈도, 한껏 움켜쥐고 있던 욕망도 모두 낙엽처럼 날아가 버리겠지. 그렇게 폐허만이 남게 되겠지…진정한 용기란, 그 폐허 위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거야.

멋지게 골프공을 날린 이 순간, 강유리는 갑자기 폐허 위에 서있는 것이란 생각에 젖어들었다. 자기가 밟고 있는 것은 ‘메르세데스벤츠 680S’의 지붕이 아니라 황량하게 폐허로 변한 맨땅이었다. 그녀는 맨땅 위에서 드라이버샷을 날린 셈이었다. 그동안 움켜쥐고 있던 모든 욕망과 아집과 삐뚤어진 사랑마저 함께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야 만 셈이었다.

강유리는 수많은 인파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메르세데스벤츠의 지붕에서 내려섰다. 그리고 새로운 땅을 밟았다. 이제 오늘이 지나면 고국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투표가 시작되겠지. ‘수고했어, 유리.’ ‘언니, 정말 멋졌어요.’ 사방에서 쏟아지는 찬사를 받으며 그녀는 아버지 강준호부터 떠올렸다. 신희영 회장, 유민 회장, 움라우트 패튼, 그리고 권도일과 유호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품은 욕심 모두가 골프공처럼 멀리 날아가 버리길 기원했다.

아무래도 가장 순수하게 사랑한 사람은 매니저 백광돌이었음을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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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