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 저 높은 곳을 향하여 (17)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나한테 시집오는 거.”

“글쎄, 신소리 집어치우라니까요?”

현성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초지종을 밝힐 수도 없는 노릇. 그녀는 참담한 표정으로 유호성을 바라보다가 대뜸 식당을 빠져나왔다. 유호성이 허겁지겁 식사비를 계산하는 동안 그녀는 벌써 드넓은 인민광장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단둥과 신의주는 악어와 악어새라고 하던가? 북한은 중국과 직접 통하는 이 번화한 길목에 많은 투자를 유치해놓고 있었으며 베일에 가려진 북한관광을 유혹하는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광장을 거니는 열 명중에 한 명은 가슴에 김정은 배지를 단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남조선 사람입네까? 반갑습네다.’ 하고 인사를 건네올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나한테 시집오라는 데 왜 그렇게 톡톡 쏘고 그래요?”

서둘러 뒤쫓아 온 유호성이 그녀의 어깨를 낚아챘다. 그가 이토록 진지하게 접근해오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미 말뚝 박힌 호박에서 말뚝을 뽑아낸들 그 흔적을 감출 수 있나? 현성애는 대차게 선을 그었다.

“당신 어머님께서 이미 며느리 감을 찍어놓았다는 걸 아직도 몰라요?”

“뭐라고요? 누구예요? 내 며느리 감이?”

“강유리! 골프선수 말예요. 신희영 회장님이 왜 그토록 호성 씨를 골프선수로 만들려고 애쓰시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아이고 답답해라, 형광등 같아!”

“허, 참!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일세.”

겉으로는 이렇게 웃어넘겼지만 순간 유호성의 머릿속은 지푸라기가 그득 들어찬 것처럼 멍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할수록 복잡한 인생이었다. 이미 이혼해서 남으로 갈라진 처지였음에도 아버지 유민 회장과 어머니 신희영 회장은 서로 영역다툼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다툼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핵이 바로 자기였음을 그는 또다시 실감하는 중이었다.

“왜 하필이면 강유리 선수야?”

“왜요? 강유리 선수가 어때서? 예쁘고, 늘씬하고, 똑똑하고, 유명하고… 어머나, 그런데 이게 웬 일이지요? 저기 저 사람… 강유리 선수 아녜요?”

“어디? 아! 맞아요. 강유리 선수. 아니 저건 또 누구야?”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으로 펼쳐진 무지개는 아름답기라도 하지. 그러나 강유리, 신희영, 강준호, 박박진진 등등으로 모여 있는 일곱 사람들의 모습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나, 오늘 무슨 작정들을 했나봐. 이걸 어째?”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느닷없이 아들 유호성을 만난 신희영은 놀라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충격적인 일이 그녀의 눈앞에서 줄줄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미 실성한 상태인지도 몰랐다. 더구나 아들 유호성의 팔에는 낯익을 법한 젊은 여자가 달라붙어 있었으니… 라싸의 썬라이즈 호텔에서 호성이를 꿰어 차고 있던 그 여자임에 분명했다.

“오우, 마이 썬! 내 앗틀!”

“나인! 앗틀 나인… 아들! 내 아들!”

움라우트 패튼은 통역원에게 코치를 받으며 반갑게 아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뜻하지 않게 장인, 장모, 처남, 아들을 동시에 만난 셈이었다. 이 아니 기쁠 손가? 하지만 신희영 회장과 강유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

움라우트 패튼 회장과의 복잡한 관계는 물론, 강준호가 친아버지라는 사실이 들통 난 강유리. 어린 정부와 함께 한 자리에서 전 남편을 만난 신희영… 이 와중에 아들 유호성까지 등장했으니 진땀이 배어나올 지경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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