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처음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국회도서관에 수십년 근무해도 담당하지 않으면 못 들어와요.”
국회도서관의 취재 협조를 받아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소재 국회도서관 뒤 의정관 지하에 있는 수장고(收藏庫)를 찾았다. 안내를 맡은 국회도서관 관계자는 “이곳은 일 년에 외부인에게 열 번도 채 공개되지 않는 곳”이라며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셋째도 조심이라고 신신당부했다.
국회도서관은 서적, 미술품 등 570여만권(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수장고는 그중에서도 고서, 희구서(稀舊書), 귀중서, 고지도 등 1만5000여권과 서예, 병풍, 도자기 등 360여점의 미술품만을 따로 보관하는 곳이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은 고서 저장공간, 오른쪽은 미술품 저장공간이다. ‘고서’는 1945년 이전 자료를, ‘귀중서’는 조선 인조가 사망한 1649년 이전 자료를, ‘희구서’는 귀중서 중에서도 희귀한 자료를 일컫는다.
20㎝ 강철문 열고 들어간 수장고…고서 1만5000여권 보관
‘귀중한 것을 간직한 창고’라는 뜻에 걸맞게 수장고는 입장 절차부터 까다로웠다. 두께가 족히 20㎝는 돼보이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화로 신발을 갈아신었다. 수장고는 바깥기온보다 서늘했다. 내부는 오동나무향으로 가득했다. 관계자는 “모든 책장은 오동나무로 돼 있다. 다른 나무보다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수장고 내부 온도는 20도에서 ±2도, 습도는 50%에서 ±5%를 적정선으로 둔다. 조도는 100~300룩스(lux)를 유지한다. 보관품이 훼손되지 않는 최적의 온도·습도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수장고 내부는 방문객 수도 제한된다. 내부 온도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관계자는 관람 내내 출입 강철문이 열려 있는지를 확인했다. 국회 도서관 관계자는 “하론가스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론가스는 화재진화용 소화 약재로, 수장고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사방으로 분사돼 산소를 순간적으로 흡수하고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만약 화재 시 수장고에 사람이 있으면 즉사할 위험이 있어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열어두는 것이라고 관계자는 부연했다.
천경자 ‘개구리’ 그림부터 흥선대원군의 서예까지 다양
고서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크기도 다양했다. 가장 작은 책은 한 뼘도 안 되는 크기의 ‘수조정식(水操程式)’, 군대의 조련, 진을 치는 방법, 행군 등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 책으로 17세기 이후 조선연병의 기본지침서다. 라텍스장갑을 낀 도서관 관계자는 ‘수조정식’을 넘기며 “지문은 물론 책을 만진 흔적조차 남기면 안 되기 때문에 목장갑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고서는 가로 1m, 세로 1.2m인 ‘선인유묵일(先人遺墨一)’로, 한 사람이 들기조차 쉽지 않은 크기였다.
일반적인 책 형태 말고도 ‘이화 개국공신녹권(李和開國功臣錄券)’ 등 두루마리 형태의 고서도 있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책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이복형제인 의안대군 이화에게 내린 공신녹이며 조선왕조에서는 처음으로 발급된 녹권이기도 하다.
고서 옆에는 각종 서예, 병풍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고 일컬어지는 천경자 화백의 ‘개구리’ 그림이었다. 채색화 분야에서 독창적인 화풍을 개척한 천 화백은 평소 화려한 색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장고가 소장한 ‘개구리’는 작가의 평소 화풍보다 연한 색감으로 그려져 차별성을 띠었다. 흥선대원군이 지인에게 선물한 ‘하당(霞當)’ 서예본도 있었다.
수장고에서 관리하는 그림은 아무도 볼 수 없는 걸까. 관계자는 “국회의장실, 각 당 대표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원하면 각 사무실에 그림을 대여해준다”며 “국회의장, 각 당 대표 임기가 끝날 때나 사무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그림을 바꾸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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