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진짜 부에는 크고 과시적인 로고가 필요치 않다”
럭셔리 소비가 변화하고 있다. 너도나도 브랜드 로고가 크게 드러난 똑같은 ‘명품’을 들고다니던 시대는 지났다. 팬데믹(대유행)이 휩쓸고 간 자리에 곧바로 경기 침체가 찾아오면서, 오늘날 명품 소비가 ‘진짜 부자’들이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명품’을 구입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 경제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는 미국 투자자문사 번스타인 분석가인 루카 솔카를 인용해 “경제가 변화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로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면서 “보다 섬세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명품이 변화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럭셔리 세계의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누가봐도 명품, 누가봐도 브랜드를 알 수 있는 ‘빅 로고’(big logo) 제품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가장 최근의 유행은 2015년도 구찌를 본격적으로 이끌기 시작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 발렌시아가 디자이너인 뎀나 밥잘리아 등이 로고에 집착했던 90년대의 문화를 다시 해석해 제품화하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브랜드 로고가 전면에 드러난 명품에 대한 소비가 급속도로 늘어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팬데믹 장기화로 오랜기간 여가에 소비를 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명품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실제 2021년과 2022년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들은 매출이 급상승했다.
이 기간 명품 소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한 이들은 명품을 처음 구입하는 젊은 소비자였다. 솔카는 “이 같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구입한 가방이나 옷들이 명품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것을 원한다”면서 “화려한 로고 제품의 판매가 늘어난 이유”라고 말했다.
이처럼 로고가 드러난 명품의 인기는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호황기에는 처음으로 명품을 살 여유가 생긴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로고가 잘 보이는 제품을 구입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불황이나 금융 불안이 심화되면 명품 소비층이 급격히 부유한 중장년층으로 축소되는데, 이 같은 소비자들은 로고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고품질의 섬세한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최근 경제적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명품 소비는 경제 불황기와 비슷한 ‘조용한 럭셔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솔카는 “앞으로 18개월에서 24개월동안 명품 부문의 성장은 더 많은 중장년층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로고가 없는 값비싼 명품은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소유자의 경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또다른 수단이 된다.
브랜딩 자문사인 ALH 어드바이저리 대표인 앤 라인 한센은 “로고가 잘 드러나지 않은 명품을 소유하는 것 역시나 자신의 상태를 투영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면서 “이들은 로고가 보이지 않는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부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크고 과시적인 로고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로고를 중심으로만든 소위 ‘로고 플레이’ 제품들의 인기가 식으면서, 유행을 주도했던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들도 하나씩 자리를 떠나고 있다. 구찌는 지난 2022년 미켈레와 결별을 선언했고, 루이비통은 새 남성복 디자이너로 파렐 윌리엄스를 영입했다.
한센은 “이전 시대에 명품 시장에서 로고의 존재는 매우 컸다”면서 “유행이 바뀌면서 이제 브랜드들은 자신들만의 차별화 방법,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기 위해 열망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