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새벽의 일이다.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시간.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마포대교 북단에서 ‘생명의 전화’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전거로 다리를 건너던 나는 그 모습이 흐릿해질 때까지 몇 번을 뒤돌아봤었다. 출근을 해서도 그 새벽의 장면은 나를 짓눌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하는 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출근이 대수였던가. 페달 밟기를 멈추고 나는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줬어야 했다.
무엇이 그 여성을 새벽 한강으로 몰아 세웠을까.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으니 고민에 잠을 뒤척이다 무작정 집을 나서 한강다리 위까지 걸어왔을 수도 있겠다. 강물을 바라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덜컥 겁이 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어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털어놨을 것이다. 그 여성은 생명의전화로 위로를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까.
다음달 자살예방 기본계획이 나온다고 한다.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낮추기 위한 방안들이다. ‘자살률(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 23.6명, OECD 회원국 1위(2021년 통계청)’ ‘20대 23.5명 30대 27.3명, 다른 연령대와 달리 급증’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 자살률 지표가 보여주는 암울한 상황에 정부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안 자살예방대책 초안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번개탄 생산 금지방안이다. 극단적 선택의 도구로 자주 활용되는 번개탄 생산을 막아 자살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자살률을 막기 위해 한강교량의 난간을 최대 1.7m로 높이겠다는 서울시의 대책에도 비슷한 발상이 녹아 있다.
서점에서 죽음에 관한 책을 잔뜩 산 고객에게 전한 서점 직원의 쪽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많이 힘드시죠? 힘들땐 힘든 것 그대로도 좋다’는 쪽지를 발견한 그 고객은 “솔직히 나쁜 생각을 안 했던 적이 없었다”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벼랑에 내몰린 이들에게는 뚝딱 만들어진 ‘조치’보다는 이 같은 위로가 필요하다.
극단적 선택에는 개인적 원인과 사회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시그널을 감지해 위로를 건넸던 서점 직원 같은 주변인들의 위로가 필요하다. 사회 역시 끊임없이 20대, 30대가 홀로 설 수 있도록 ‘공정한 무대’를 깔아주며 위로를 건네야 한다. 청년들의 자살 원인을 능력주의와 경쟁주의·획일성을 강요하는 교육 시스템과 사회문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와 경제적 충격 등으로 분석한 인권위의 제도 개선 권고도 같은 맥락이다.
소설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를 통해 닉혼비는 극단적 선택을 위해 한 옥상에 동시에 오른 네 명의 자살기도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네 명의 자살기도자들은 연대를 통해 살아보기로 약속한 90일을 버텨낸다. ‘저게 돌아가고 있을까?‘ (중략)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이다.
적어도 20·30대에게는 번개탄 생산 금지 조치보다는 세상이 ‘희망’을 향해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있다는 위로를 건네야 하지 않을까.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전화 129, 생명의전화 1588-9191, 청소년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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