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
지난 2월 시작...10개월간 고군분투
신진 작창·극작가 4인4색 무대 신선
파격적 요소, 기존 창극과 차별화
“프로젝트 자체가 새로운 백년대계
”인재양성·IP 개발로 새 무대 마련“
”멘토·관객 평가종합 기획공연 추진“
이것은 삼행시다.
“ ‘게’ 게에노무시키야, ‘우’ 우선 한 대 맞자, ‘사’ 사람 돼야지.”
쾌락만 탐하는 금수저 남편 ‘김무숙’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처가 기생 ‘의양’으로 변신하려 의지를 다지는 장면. 사실 ‘게우사’는 ‘벗을 타이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젊은 창극’은 제목부터 비틀고 뒤집어 객석으로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 중 ‘무숙이타령’이 다시 태어난 ‘게우사’는 도발과 의외성의 연속이다. 능청스럽게 풀어낸 말맛과 소리, 연기의 향연이 쉴 새 없이 강약 펀치를 날린다. 난데없이 ‘하나님 타령’을 하는 찬송가가 습격하고, ‘속사포 랩’의 화신 아웃사이더 못잖게 빠르고 정확한 발음으로 찰진 소리가 이어진다. MZ세대 신진 작창가 서의철과 극작가 이철희의 ‘게우사’는 2022년 창극계에 가장 인상적인 등장을 알렸다.
새로운 시대의 창극(唱劇)이 등장했다. 전통을 성큼성큼 뛰어 넘어 직조한 기발한 세계. 국립창극단 60년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고 명랑한 시도가 네 명의 젊은 작창가와 극작가를 통해 완성됐다.
국립창극단은 지난 2월 ‘작창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허종열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직무대리는 “기존 다섯 바탕의 전통 창극을 넘어 글로벌 시대에 맞는 신진 작창가를 발굴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프로젝트”라며 “극본 작업을 마친 이후 멘토들의 수업을 통해 네 명의 작창가를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이어왔다”고 말했다.
최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열린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는 지난 여정의 결실이다. 창극의 역사는 국립창극단과 함께 진화를 거듭했다. 기존의 소재에서 서양의 고전과 그리스 로마 신화, 웹툰으로 소재를 확장, 현대적 창극을 무대에 올리며 우리 시대의 관객과 소통해왔다. 이번 작창가 프로젝트는 동시대와 더 가까이 호흡하기 위한 국립창극단의 시도이자, 새로운 세대의 작창가를 발굴해 ‘지속가능한 창극’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한국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가지고 극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소리를 짜는 ‘작창’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창극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작창가 장서윤 유태평양 서의철 박정수는 지난 10개월 동안 각자의 창극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신진 작창가 네 사람은 중진 작가 김민정(옹처), 김풍년(강릉서캐타령), 이철희(게우사), 김민정(덴동어미 화전가)과 각각 팀을 이뤄 협업했다.
젊은 작창가들의 창극은 신선했다. 전통의 요소들이 중심을 잡으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색다른 시도가 어우러졌다. 기존 창극에선 볼 수 없는 파격이 이어졌고, 영화·드라마·K팝의 인기 대사와 가사가 속속 녹아들었다.
‘옹고집타령’을 재해석한 ‘옹처’(작창 장서윤)는 ‘동시대 창극’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전통의 세계에서 비춰진 남녀의 역할과 위치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선택과 결정권을 강조한다. 작창은 무리 없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요소는 약해 다소 심심할 수 있지만, 몇몇 실험적 시도가 인상적이다.
“어감이 잘 붙지 않아 기존 창극에선 들을 수 없었던 경기토리(경기지방의 음악어법)를 사용”(허종열 감독)한 점이다. 거기에 풍자 가득한 대사 사이로 “몰디브에서 모히토, 모히토에서 몰디브”라며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차용한 것도 의외의 재미였다.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유태평양은 ‘명민한 작창가’였다. 유태평양이 작창한 ‘강릉서캐타령’은 짧은 30분 안에 국립창극단이 그간 보여준 두 시간 짜리 창극의 모든 요소를 압축해 기승전결을 완성했다. 간결하고 깔끔하게 시작하는 무대는 다채로운 음악, 변화무쌍한 작창으로 점차 세계를 확장한다. 관객과의 능수능란한 ‘밀당(밀고 당기기)’도 다년간의 창극무대 경험이 만들어낸 장기다. 유태평양은 대본을 빛내고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 관객들이 원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 작창가였다.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하게 이어지는 장단(리듬)과 길(음계), 성음(악상)은 객석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막내 작창가 박정수가 참여한 ‘덴동어미 화전가’는 음악과 소리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난 창극이다.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의 봄날을 이야기하며 소리와 그 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음악에 집중했다. 기존 창극의 형식과 소리의 본질을 되살린 창극이었다.
소리를 만드는 것은 ‘짓는다(작창, 作唱)’라고 표현한다. 집을 짓고, 밥을 짓고, 글을 짓는 것처럼 소리 역시 ‘짓는다’고 말한다. ‘빠른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에 ‘짓는다’는 것은 오랜 기다림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긴 시간 쌓아온 노력과 정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가 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창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프로젝트에 멘토로 참여한 한승석 중앙대학교 교수는 “작창은 단시간에 완성되지 않는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라며 “같은 국악인이라 하더라도 판소리의 복잡다단한 붙임새와 시김새, 음악적 변화를 온전히 꿰뚫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는 시간의 역사가 쌓아온 소리꾼들의 재능을 발굴해 새로운 작창가로 육성하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창극의 ‘새로운 미래’이자, 다음 세대를 가꾸는 ‘백년지대계’다. 국립창극단은 이를 통해 새로운 작창가 양성과 IP(지적재산권) 개발의 밑거름을 다지고, 신진 작창가들에겐 날개를 펼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
허종열 감독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우열을 가리기 힘든 네 명의 작창가와 작품을 발굴했다”며 “이 작품들 중 멘토들과 관객 평가를 종합해 국립창극단의 기획공연으로 선보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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