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연구부정행위 증가 추세
“다수, 징계시효 초과로 낮은 수위 징계”
사실상 대학들 자체 규정으로 자율검증
관행·낮은 처벌·대학 이해관계들 엮여
“K-학위 전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져”
[헤럴드경제=김희량·박혜원 기자] 교수·정치인·연예인부터 대통령 부인까지 피해 가지 못한 ‘논문 의혹’은 한국 학계의 오래된 골칫거리다. 표절로 대표되는 연구부정행위가 수년이 지나도 끊이지 않아서다. 만연한 연구부정행위는 연구자들의 의욕을 꺾고 국제사회에서 한국 대학 학위의 위상을 추락시킨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학계의 연구부정행위는 ‘현재진행형’이다. 2005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후 교육부는 연구윤리지침(2007)을 만들었지만 현장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20일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연구부정행위 의혹 건수는 총 391건으로, 전년 대비 60% 늘었다. 연구부정행위는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저자 표시, 부당한 중복 게재, 조사방해행위 등을 일컫는다. 최근 5년간 연구부정행위 의혹 건수는 ▷2016년 92건 ▷2017년 58건 ▷2018년 110건 ▷2019년 243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건수는 제보나 인지를 통해 접수된다.
의혹 건수 중 연구부정행위로 최종 판정된 건은 10건 중 3건꼴(28.1%, 2020년)이었다. 하지만 방심하기 어렵다. 이 비율은 전년도인 2019년 37.4%였고, 연구재단이 2019년 전에는 부정행위 판정 건수와 미판정 건수를 구분해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실제 확인 결과, 부정행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됐거나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결론이 났을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연구부정행위 최종 판정 결과를 보면 부정행위자는 교수(92건, 83.6%)가 가장 많았고, 대학원생(13건, 11.8%)이 뒤를 이었다.
부정행위가 드러나도 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조치가 미흡하다. 2020년 연구부정행위 판정을 받은 110건은 ▷경고 30건(28.3%) ▷조치 없음 14건(13.2%) ▷견책 및 논문 철회 각 11건(10.4%)으로 처리됐다. 연구재단은 “다수의 논문은 통상 3년인 징계 시효를 초과해 주의, 경고 등 낮은 수위 징계를 받았다”며 “주로 부당한 저자 표시, 표절, 부당한 중복 게재 문제가 발견됐다”고 분석했다.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 또한 모든 연구·논문이 대상은 아니다. 지난해 시행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는 연구윤리 확보 및 제재 처분이 명시돼 있으나 정부 출연연구비를 지원받는 연구에 한정된다. 게다가 이 법에서는 부정행위가 발생한 과제·연구의 종료일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처분이 불가하다. 학위 논문에 대한 검증은 각 대학이 교육부 훈령을 가이드라인 삼아 자체적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학위 취득·논문 게재 후 수년이 지난 뒤 부정행위가 발견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달 사퇴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의 경우 2002년 한국정치학회보에 과거 박사학위 논문(1998)을 중복 게재해 10년이 지난 2012년 학회로부터 투고 금지 징계를 받았다. 가수 홍진영은 2009년 취득한 석사학위의 논문이 2020년 표절 판정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 또한 각각 1999년, 2007년 석·박사학위 논문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연구부정행위 실태는 학위를 준 대학과 한국 대학의 대내외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런 위기의식은 국내 최고 대학으로 알려진 서울대 또한 느끼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달 내놓은 중장기 발전계획 보고서에서 도덕적 해이가 드러난 연구윤리 실태와 부족한 자정능력이 10년 뒤 위상을 하락시킬 이유 중 하나로 언급했다.
학계에서는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과도한 실적주의 ▷연구부정행위를 가볍게 여겨온 관행 ▷징계 등 처벌 수위가 낮은 점 ▷대학 재정 문제 등이 지목된다. 논문은 학령인구 감소 상황에서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대학의 이해관계와 연구비 등 성과가 필요한 교수들의 생존과도 연결돼 있어서다.
김경한 중부대 교수(전국사학민주화교수노조위원장)는 “한국 사립대학의 석·박사학위는 학력 세탁·지위 상승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며 “특수대학원 등에서 수준 미달인 학위 논문 표절이 묵인돼온 것도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국립대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6월에도 서울대 윤성로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AI 분야 국제 학술대회 CVPR에 발표한 논문에 연구부정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한 해당 대학원생은 표절을 인정한 상태다.
강민정 의원실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연구실은 30여명이 넘는 대학원생이 소속된 것으로 파악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공계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대학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으려 대형 연구실을 유지하고 대학원생을 많이 입학시킬 수밖에 없다”면서 “교수가 연구나 논문지도보다 연구기업의 장처럼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연구 환경이 양적 위주 평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해 제대로 가기보다는 빨리 가자는 분위기”라며 “특히 이공계는 연구비와 연구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의 영향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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