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일교차 10℃  이상 돼야 이슬 맺혀

보름정도 빨라진 추석에 '포도순절' 빛바래

무병장수 기원 ‘토란국’ 이젠 명절에만 즐겨

[헤럴드경제] 음력 8월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둔 8일은 24절기 중 15번째 절기인 백로(白露)다. 백로는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증기가 낮과 밤의 급격한 일교차로 인해 풀잎이나 나뭇가지 등에 이슬로 맺히기 시작하는 때를 가리킨다.

최근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온 현상으로 일교차가 줄어 이슬이 맺히는 날도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백로에는 전국이 맑은 가운데 아침 최저기온이 12~16℃, 낮 최고기온은 25~29℃를 보이면서 산간 지역에서는 이슬을 볼 수 있겠다.

백로쯤엔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 서늘하고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러져 간다. 일교차도 커지면서 낮의 햇살은 맹렬한 기세로 눈을 찔러댄다. 하지만 추수를 앞둔 들녘의 벼나 수수 등 곡식들과 제철을 맞은 포도는 하얀 분가루를 잔뜩 이고, 가시투성이 알밤은 제집이 비좁은 양 살랑거리는 미풍에도 절로 후드득 떨어진다.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열흘 정도를 ‘포도순절(葡萄殉節)’, 즉 포도의 계절이라 부른다. 처음 수확한 포도는 사당에 올리고, 그 집안 맏며느리는 포도 한 송이를 통째 먹어 가문과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 포도순절의 의미는 그 빛이 바랠 듯싶다. 백로 이후 이틀 만에 찾아온 빨라진 추석 명절로 인해 아직 햇볕이 부족한 포도는 당도가 채 오르지 못하고, 단감은 아예 푸른빛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산 과일이 없는 틈을 수입 과일이 제자리인 양 차지하고 있어 수확을 앞둔 농부의 가슴은 이래저래 애달파진다.

포도가 다산을 상징한다면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추석 절식 중 하나가 바로 토란이다. 토란은 일 년 내내 한 번도 밥상에 오르지 않다가 추석이나 설 명절이 오면 차례상 앞줄에 당당히 자리한다. 끈적거리고 미끄덩거리는 토란은 언제부터 먹어왔을까.

화분 한 귀퉁이에서 자라는 토란과 겉 껍질을 제거한 토란 뿌리(작은 사진). 이운자 기자
화분 한 귀퉁이에서 자라는 토란과 겉 껍질을 제거한 토란 뿌리(작은 사진). 이운자 기자

시골을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마당 한 귀퉁이에 연잎처럼 생겼지만, 그 모양새가 중생대 익룡의 부리처럼 긴 타원형의 외떡잎식물을 봤던 기억이 있을 터다. 토란의 잎과 줄기는 삶아서 말려 나물로 먹거나 해장국 부산물로 넣어 사용한다. 땅의 달걀이란 뜻의 토란(土卵)은 독초로 알려진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뿌리채소다. 연잎처럼 잎이 퍼졌다고 해서 토련으로 불리기도 하며 추석을 전후로 나온다.

1241년 고려 시대 이규보가 펴낸 문집 ’동국이상국집‘에는 토란국을 끓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농가월령가 8월령에도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하고‘ 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조선시대 때는 이미 추석 절식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토란을 먹어야 한 해의 액운을 막는다고 여겼다고도 한다. 추수를 앞두고 부족한 곡식 대신 배고픔을 해결해준 고마운 양식으로 대접받던 토란. 하지만 남미에서 감자와 고구마가 전해지면서 주요 작물의 지위를 잃게 된 토란은 밥상에서도 서서히 멀어져 갔다.

미끄덩거리는 식감과 달리 알칼리성 식품인 토란에는 칼륨, 바티민 B1, B2 등 무기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를 돕고 변비를 예방하며 당분을 에너지로 바꿔 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토란의 끈적거림은 뮤틴(mutin)과 갈락탄(galactan)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뮤틴은 위의 손상을 막아주고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들어 있어 소화 작용도 돕는다. 갈락탄은 식이섬유의 일종으로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을 낮춰줘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다만 토란에는 옥살산칼슘 결정체가 들어 있어 점막과 피부를 자극해 맨손으로 만질 경우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약간의 독성과 아린 맛이 있어 반드시 푹 익혀 먹어야 한다.

토란은 모양이 둥근 타원형으로 껍질이 촉촉하고 머리 부분에 푸른색이 없는 것을 고르는 게 좋다. 흙 토란의 경우 끓는 쌀뜨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후 찬물에 담가 껍질을 까면 아린 맛과 독성이 제거된다. 시판 중인 껍질을 깐 토란도 소금을 넣은 쌀뜨물에 살짝 데쳐 사용한다.

토란과 들깻가루로 끓어낸 추석 절식으로 꼽히는 토란들깨탕. 이운자 기자
토란과 들깻가루로 끓어낸 추석 절식으로 꼽히는 토란들깨탕. 이운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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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