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극 왕자님’에서 뮤지컬 신예로…

‘레베카’ 남주로 최고의 등장신 완성

베테랑 배우들 사이에서 긴장ㆍ압박

 

무대와 TV 드라마의 간극에 연기 고민

“지금도 공연 전날이면 떨려…

배우 인생 돌아본 터닝포인트”

올해로 데뷔 17년차 된 배우 이장우가 뮤지컬 ‘레베카’로 관객과 만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레베카’와의 만남, 배우 인생 터닝포인트”라고 말했다. [EMK 제공]
올해로 데뷔 17년차 된 배우 이장우가 뮤지컬 ‘레베카’로 관객과 만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레베카’와의 만남, 배우 인생 터닝포인트”라고 말했다. [EMK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남자 주인공의 등장에 꽉 채워진 객석에선 탄성이 새나왔다. 엄기준 신성록 등 쟁쟁한 남자 배우들이 이 역(막심 드 윈터)을 거쳤다. 인품, 재력, 외모까지 다 갖춘 막심은 ‘선망의 대상’이다. 지금으로 치면 재벌2세, 극 안에선 최상류층 귀족이다. 그가 등장하면 무대 위는 술렁인다. 곁눈질로 훑어보고 말이라도 걸기 위해 난리법석이다. 이번엔 무대 아래도 술렁였다. ‘주말극 왕자님’으로 불리는 배우 이장우의 실물을 마주한 관객들의 첫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TV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이 나오니 그런 반응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 안에서 제가 잡아갈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섯 번째 시즌을 맞으며 전에 없는 반응을 만든 이 장면은 ‘레베카’의 길이 남을 등장신이 됐다. 이젠 ‘가루 막심’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 모든 요리를 가루로 만들어낸 ‘가루 요리’ 마니아 캐릭터와 합쳐진 별명이다.

지난해 11월 개막, 어느덧 두 달째 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 이장우는 요즘 온전히 ‘레베카’(2월 27일까지·충무아트센터) 안에 살고 있다. 최근 서울 도곡동 에뚜아르에서 만난 그는 “지금도 공연 전날이면 엄청 떨린다”며 “이 작품으로 인해 상당한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9년 연말 개막한 ‘영웅본색’에 출연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조기 폐막해 ‘무대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부담감이 있더라고요. 드라마를 오래 하다 보니 틀리면 ‘다시 할게요’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무대는 틀리면 안 되잖아요. 오늘 온 관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공연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압박과 긴장을 가지다 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 이어 무대로 옮긴 ‘레베카’에서 막심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유약하고 신경질적인 작품 속 막심은 이장우와 만나 무게감과 미스터리, 신선함을 더했다. 이 모습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적잖이 험난했다. 이장우에게 ‘레베카’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과정이었다. “물 흐르는 대로, 큰 욕심 없이 살아왔다”던 그에게 “무난하게 하고 싶지 않고,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 작품이기도 했다. 그 마음이 배우로서의 삶을 거세게 흔들고 있었다.

옥주현 신영숙 등 뮤지컬계 베테랑 배우들과의 호흡,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라는 작품의 무게는 고스란히 이장우의 어깨로 내려앉았다. “캐스팅됐을 때, 내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다니…실화인가? 그런 생각도 했어요. 대학 때부터 팬이었던 선배들이 일렬로 서서 노래 연습을 하는데, 너무 소름이 돋더라고요. 이런 엄청난 작품에 캐스팅됐는데, 내가 망치면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엔 너무 부족하니 짜증이 났는데, 나중엔 수준 차이가 크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웃음)”

‘주말극 왕자’, ‘어머니들의 아이돌’로 불리는 배우 이장우가 두 번째 뮤지컬 ‘레베카’로 무대에 서며 역대 최고의 등장신을 완성했다. 스스로는 “지금도 공연 전날이면 너무 떨려 긴장과 부담의 연속”이라지만, 관객들은 이미 합격점을 줬다. [EMK 제공]
‘주말극 왕자’, ‘어머니들의 아이돌’로 불리는 배우 이장우가 두 번째 뮤지컬 ‘레베카’로 무대에 서며 역대 최고의 등장신을 완성했다. 스스로는 “지금도 공연 전날이면 너무 떨려 긴장과 부담의 연속”이라지만, 관객들은 이미 합격점을 줬다. [EMK 제공]

무엇보다 무대와 TV 드라마의 간극은 컸다. 이장우는 “카메라 앞에서 추구했던 자연스러운 연기가 무대에선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상반신으로 클로즈업해 들어오는 카메라 앞에서, 과장되지 않은 섬세한 연기를 주로 해온 이장우에게 3층까지 자리한 1250명의 관객에게 전달되는 연기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힘을 빼야 자연스러웠던 카메라 앞 연기와 무대에서의 자연스러운 연기 방식은 다르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처럼 연기를 하면 뒷좌석까지 보이지도 않고요. 걸음걸이도 이상하고, 손도 이상하고… 처음 연습할 땐 차마 볼 수 없는 수준이었어요. 지적도 많이 받았고요. 사실 제가 이런 지적을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제가 봐도 어색하니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될 때까지 연습하는 방법 밖엔 없었어요.”

2006년 데뷔해 어느덧 17년차. ‘어머니들의 아이돌’은 그냥 탄생하지 않았다. 시청률 30%를 훌쩍 넘긴 드라마에서 극을 이끄는 남자 주인공으로 딱 맞는 옷을 입어왔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을 찾아내는 안목, 모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는 지난 긴 시간이 쌓은 이장우의 강점이다. 그럼에도 그는 ‘레베카’ 무대에 서며, 자신의 지난 시간까지 돌아보게 됐다.

뮤지컬을 시작한 것이 “엄청난 도전은 아니”었다고 한다. 드라마, 예능은 물론 가수로서 앨범도 발매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스스로는 “잡기술이 많아 이것저것 해보고 재밌어 하는 부류”라며, 뮤지컬도 편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처음 드라마를 할 때도 지금처럼 긴장도,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너무 깊이 고민하는 것보다 편하게 마음 먹어야 연기도 잘 나올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가볍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해왔어요. 뮤지컬은 편하게 생각하면 답이 없더라고요. 더 깊이 생각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더라고요. (옥)주현 누나, (신)영숙 누나는 정말 이 안에 모든 걸 다 바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너무 쉽게 살아왔구나, 그래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 멈춰 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내 안의 것이 피해를 보고 스트레스도 받아야 발전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애써 돌려 말하는 법도 없었다. 그는 지난 몇 개월간 느낀 마음의 고민을 차분히 꺼내놨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관객들이 영향을 받을까 걱정이 된다”면서도 “거짓말로 잘 하고 있다고 꾸며낼 순 없다”고 했다. 사실 관객들은 이미 합격점을 줬다. 스스로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여력도 없어 대본에만 충실한다”지만, “이장우만의 신선함이 장점”이고, “드라마를 많이 해 섬세한 표현과 정확한 발음, 발성이 편안했다”는 반응이 많다. 뮤지컬 배우 이장우에게 가장 혹독한 점수를 주는 것은 자신이었다.

이장우는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의 무대를 위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연습한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과 연극을 수차례 관람하며 보는 눈을 키우고, 레슨도 알아보며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한다.

“제 인생에 있어서도 지금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매일 아침 도망갈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금 여기서 도망간다면 루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긴장과 압박감은 순식간에 깨지더라고요. 물론 가만히 있으면 깨지진 않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있어요. 이 경험이 다음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