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골격계질병 산재 신청자가 증가하면서 처리기간이 84.3일에서 121.4일로 늘어났다. 고용노동부는 처리기간 장기화 문제해결을 위해 근골격계질병 당연인정기준 도입안을 지난 12월 20일 행정예고했다. 당연인정기준에 해당하는 업종 및 직종 종사자의 재해조사를 대폭 생략하고 신속히 산재를 인정하는 것이 골자다. 당연인정기준은 추정의 원칙을 산재업무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직업병 여부를 추정해 결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직업병 유무는 업무와 상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를 확인해 판정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법에 없는 추정의 원칙을 고시로 도입해 신속한 산재 처리를 도모한다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크다.

정부는 또 ‘추정의 원칙(principle of presumption)’ 개념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권위적으로 단정하는 가정(assumption·그럴 수 있다)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러한 가정은 반증이 불가능하다. 반면 산재보험제도에 적용되는 추정(presumption·이러한 사정을 미뤄 그럴 수 있다)의 개념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미뤄볼 때 사실로 추정(presumption)할 수 있다는 개념이며, 그래서 명백한 증거 등의 확인 시 반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량물 취급’이 요추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을 일으킨다는 것은 연구로 확인된 사실이다. 만약 중량물 취급 사실이 확인된 근로자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아 산재 신청을 했다면, 다양한 원인에 의한 허리디스크 발생 가능성에도 직업병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추정의 원칙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중량물 취급 사실’이 당연인정기준이다.

그러나 ‘서서 일하는 것’이 허리디스크를 유발한다는 것은 객관적 연구로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서서 일하는 것’은 당연인정기준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라 단순하게 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당연인정기준 도입안은 산재신청이 많은 근골격계질병 중에서 직업병 인정을 받은 비율이 높은 업종과 직종을 당연인정기준으로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

한편 이번 당연인정기준은 조선업과 자동차, 타이어 산업 직종에 과도하게 집중된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들 업종은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활동 등으로 산재신청이 활발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단순 통계빈도로 접근하다 보니 특정 업종에 치우친 당연인정기준이 마련됐다. 산재보험 제도를 잘 모르고 산재신청에 익숙하지 않은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업 근로자 등은 실제 작업강도와 상관없이 상대적으로 더 산재승인이 어려워지는 차별을 맞게 됐다.

추정의 원칙을 산재보험제도에 적용하려면 합리적 당연인정기준이 필요하다. 합리적 당연인정기준은 최소한 ‘허리디스크’등의 상병 진단이 돼야 하고, 허리디스크를 유발한다고 연구·조사된 중량물 취급 사실이 업무 내용으로 확인돼야 하며, 비직업적 요인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새로 제시한 근골격계질병 당연인정기준안은 상위법을 어기는 것이며, 추정의 원칙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기준을 정해 업종과 직종 간 차별을 발생시키는 규정이므로 재고돼야 한다.

김수근 의학박사·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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