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의 역사가 국내 전문가에 의해 생생하게 복원됐다.
수메르 연구에 30여년을 바친 작가 김산해의 유작 ‘최초의 역사 수메르’(휴머니스트)다. 작가는 집필 중 세 번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놓치 못한 원고를 탈고한 지 4개월 만인 지난 달 세상을 떴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점토판 원전을 국내 처음으로 해독, 지난해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펴냈던 그는 이번 ‘최초의 역사 수메르’ 역시 전 세계 18개 박물관에 보관된 수백 장의 점토판에서 설형문자 기록을 한국어로 바로 해독, 수천 년 동안 존재했던 수매르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최초의 도시문명국’ 수메르의 발견은 고고학적 최대 사건으로 기록된다. 1872년 발굴 공개된 ‘길가메시 서사시’와 왕들의 계보를 적은 ‘수메르 왕명록’은 수메르를 역사의 시간으로 돌려놓았다.
여기에 1877년 프랑스인 사르체크가 기원전 2600년~2334년에 벌어졌던 수메르 최대 도시국가 라가쉬와 움마의 전쟁, ‘에덴쟁탈전’을 증명하는 문자사료를 발굴하면서 인류는 비로소 진정한 최초의 역사기록을 마주하게 됐다.
책은 원수메르인이 유프라테스 강가 오우에일리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한 기원전 6500년경부터 우르 3왕조 멸망으로 수메르문명이 지상에서 사라진 기원전 2004년까지 약 4500년 동안의 역사를 속도감있게 기술한다. 저자는 생략과 비약의 역사기록을 대신하는 함축적이고 담백한 서술로 최초의 도시가 생기고 대홍수가 도시를 집어삼기코, 영웅-왕 길가메쉬가 등장하는 역사의 태동기를 보여준다. 이어 비옥토 에덴을 차지하려는 끝없는 쟁탈전과 최초의 수메르 제국의 탄생, 악카드의 사르곤의 침공과 점령, 수메르 도시국가들의 독립운동과 끝내 권력 암투로 멸망하기까지 수메르의 대서사를 펼쳐낸다.
특히 수메르에서 가장 넓은 땅과 비옥토 에덴을 소유한 부국, 라가쉬의 역사 복원이 눈길을 끈다. 왕들의 선정과 악정, 배신과 음모, 부정부패와 비리, 횡포는 이후 역사시대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수메르 점토판을 치밀하게 읽고, 검토해 기존 수메르 학설의 모순과 오독을 밝혀내기도 한다.현재 ‘수메르 역사의 표준’으로 여겨지는 ‘수메르 왕명록’의 역사왜곡을 지적한 것이다. ‘수메르 왕명록’은 기원전 1817년 이씬 왕조의 필경사 누르-닌슈브루가 기록한 것으로, 저자는 이 왕명록에 수메르의 실제 역사인 ‘에덴전쟁사’가 빠져 있음에 주목한다. 수메르에서 최대 영토, 최대 부국이었던 라가쉬의 왕들과 역사, 움마에 대한 기록이 모두 누락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누르-닌슈브루가 ‘수메르 왕명록’을 기록할 당시 그의 조국 이씬은 위기상황이었다. 라가쉬 지역 총독 군구눔이 라르사라는 새 왕조를 건설, 영향력을 뻗치면서 이씬 왕조의 운명이 기울어지자 누르-닌슈부르는 조국에 정체성· 정당성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 왜곡을 감행한다. 이방인의 왕조, 이씬을 우르 3왕조에 이어 붙이는 식으로 수메르 왕조로 변조, 고대 셈족,악카드의 역사로 만든 것이다.
책은 200여장의 현장감 넘치는 시각 자료와 전문성을 보여주는 본문보다 긴 주석과 설명으로 인류최초의 문명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국내 첫 수메르 전문 연구자의 수메르문명사로, 국내 척박한 수메르 연구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최초의 역사 수메르/김산해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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