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4월 독일의 유명 예술사학자 예쎈 박사(1858~1925)가 미국, 일본을 거쳐 조선을 찾았다. 역사와 예술품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를 인식해온 예쎈은 서양을 모방하기 바쁜 일본에 실망했다. 부관연락선을 타고 온 그는 조선의 거리풍경과 양반과 천민의 생활, 왕궁과 이왕가 박물관, 조선의 공예품 등에 대한 인상을 비교적 자세히 적었는데, 노예처럼 일하는 농민과 수공업자들과 달리 상점 앞에서 하릴없이 담배나 피우고 수다 떠는 양반을 ‘우아한 루저’로 표현, 조선의 폐해를 전했다.
그는 조선을 방문하고 쓴 여행기 ‘답사기:조선의 일본인’에서 잘못된 역사 지식을 줄곧 드러내는데,예술심미안만은 숨기지 못하고 중국과 다른 청백자의 섬세함과 색감에 매료된다. 또한, 황제 소유 인쇄소에서 한글 금속활자체가 들어있는 오래된 식자 상자를 본 감동을 전하며,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1400년경에 사용되고 있는 수준 높은 인쇄 기술로 제작된 한글 인쇄물 한 두 권을 집으로 가져왔다고 썼다.
고혜련 박사가 연구년을 보낸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찾아낸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조선을 다녀간 독일인들의 방문기는 당시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 조선을 실상을 보여준다.
예쎈의 표현을 따온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898년 당현(당고개) 금광을 조사하고 돌아간 크노헨하우어의 1901년 강연문과 1913년 조선을 경험한 예쎈의 여행기, 1933년 라우텐자흐 교수가 백두산 밀림에서 만난 이름 모를 독립군 이야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답사기를 바탕으로 당시 대한제국에 대한 잘못된 역사와 인식을 바로 잡는데 공을 들였다.
1898년부터 1년 반 동안 대한제국에 머물면서 광물 지질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수차례 답사한 크노헨하우어는 당시 독일에서 열기처럼 번진 조선에서 금광찾기가 희망적이지 않다고 보고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조용히 자연에 적응하면서 그저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나라였다. 한중일 3국중 가장 멋진 신체조건을 갖춘 성품이 소박한 조선인은 조용하고 과묵하지만 삶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
저자는 급변하는 대한제국이 세계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해 제국주의 희생양이 됐지만 ‘서양일본인’이 되고자 몸부림친 이웃과 달리 자주적 조선 개화를 지향했음을 강조한다. 또한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도 당시 회의엔 참석하지 못했지만 당시 밀사들이 각종 강연과 각국 언론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등 일본의 만행과 대한제국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는 고종의 특명을 효과적으로 실행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독일의 자료들에 나타난 역사지식의 오류를 일일이 지적, 바로잡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우아한 루저의 나라/고혜련 지음/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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