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누구에겐 수억 원을 벌어다주는 재테크 수단이지만 누구에게는 단 한 칸의 방이 폭력을 피할 유일한 안식처가 된다.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일다 엮음)는 수억 씩 뛰는 아파트의 꿈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공부와 일을 하고 안식을 취하는, 또 사랑하는 사람과 그냥 함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한 칸 방의 행복을 말하는 진정한 집의 얘기다.
시시선씨는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한밤 중 돌연 가방을 싸들고 탈출했다. 그리고 ‘퀴어 마을’, 망원동으로 스며들었다. 망원동을 선택한 건 한 퀴어가족의 평소 따뜻한 환대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애인 윤과 가족이 됐다. 방 하나의 집이지만 그는 좁게 느끼지 않는다. 주위에 친구들과 함께 구축한 공동체, 가상의 마을 덕분에 심리적으로는 꽤 넉넉한 공간을 향유하고 있다. 그는 법적 가족이 되고 신혼부부 대출도 받아 2인 가족에 걸맞은 주거공간을 보장 받는 꿈을 꾼다
라일락씨는 만 16세 때 집을 나왔다. 세뱃돈 등을 꼬박 꼬박 모은 100만원으로 고시원에 들어갔다. 빛도 안들어오고 환기도 안되는 세 평 방이었지만 만성적인 아토피가 나을 만큼 그를 해방시켰다. 그동안 집은 그에게 통제와 폭력의 공간이었다. 가출청소년이란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며 어엿한 독립을 하게 된 데에는 탈가정 청소년들의 어려움을 헤아려준 청소년 활동가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핑크핑크한 어린시절의 방과 그의 지금 방은 다르다. 책장에는 문제집 대신 영감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책들로 가득하고, 옷장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붙어있다. 옷장에는 몸을 옥죄지 않는 옷 몇벌이 채워져 있다, 그의 방은 하나씩 꿈을 채워가는 공간, 자신이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방이다.
책에는 이혼하고 일곱살 아이를 둔 엄마의 집, 트렌스젠더 에디의 편안한 이태원 집 등 열 명의 집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회적 시선으로 보면 작고 보잘 것 없어보이는 공간이지만 이들에겐 세상의 전부다. 따뜻하고 평화롭고 생기롭다. 집은 원래 그래야 하는 곳인데 이들의 얘기가 새삼스럽게 들리는 건 왜일까?
나다움을 잃지 않는 최소한의 방어선인 방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투기와 불안을 부추기는 시대, 집에 대한 담론이 달라져야 함을 일깨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시시선, 라일락 외 지음/일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