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초, 필자는 오랫동안 수행해왔던 철강 연구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소재산업의 최신 경향 파악과 국책과제 기획 등의 연구기획업무를 경험하고자 연구원 내 연구기획실로 부서 파견을 하게 됐다. 업무가 채 손에 익지 않던 몇 달 후 일본 정부는 급작스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시행했다.

반도체산업이 주력인 우리나라는 ‘블랙스완’과 같은 일본의 규제로 인해 패닉에 빠졌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은 반도체 생산에 직격탄을 맞았다.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기업과 정부, 연구소 등이 발벗고 나섰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3개 품목에 대한 해결방안을 즉시 마련하는 동시에 대일 의존 품목 파악과 더불어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과 ‘3N(N-Lab, N-Team, N-Facility) 정책’이다. 참고로 한국재료연구원은 필자가 소속된 철강재료연구실을 비롯해 타이타늄연구실, 알루미늄연구실, 금속분말연구실 등 총 4개의 연구실이 N랩(N-Lab)으로 지정됐다.

당시 철강 분야에서도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과 ‘3N’의 지원이 필요한 대외 의존 품목이 꽤 도출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회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을 보유한 상황에서 대외 의존 품목이 있다는 건 다소 의외였다. 기술력이 부족해서 수입하는 품목도 있지만 국내 시장이 크지 않아 기업에서 개발의 필요성을 못 느껴 수입되는 품목도 있었다.

기술력이 부족한 철강 품목으로는 ‘고급 형강’과 ‘발전용 내열강’이 조사됐다. ‘형강’제품은 주로 건축구조용으로 사용되는데, 화재에 강하고(내화) 지진에 견디며(내진) 외부 충격에 버티는(고인성)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고급 형강이 수입 의존도가 높았다. 이후 한국재료연구원은 현대제철과 함께 내화와 내진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는 건축용 형강을 개발했고 현재는 해양용 고성능 형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 또한 개발에 성공하면 국내 철강기술의 경쟁력과 함께 해양플랜트용 형강의 국산화로 국내 조선산업의 경쟁력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발전용 내열강’은 고온에서 장기간 사용되는 발전 특성상 고도의 성능이 요구돼 수입 의존성이 높았다. 수입 대체 외에 신기후 체제 대응을 위한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서라도 발전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사용이 가능한 고성능의 내열강 개발은 필요했다. 현재 연구과제를 통해 목표하고 있는 630도(℃)급 내열강 개발에 성공할 경우 세계 최고 효율의 복합 화력발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급 형강과 고성능 발전용 내열강 개발에 더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의 기법을 활용해 형강과 내열강의 물성을 예측하는 기술 개발도 함께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연구원은 물고기(형강, 내열강)뿐만 아니라 물고기를 낚는 방법을 기업과 공유함으로써 철강기술의 고도화를 이끌고자 한다.

2019년을 되돌아보면 애초 의도했던 연구기획업무를 많이 경험하진 못했지만 전례 없는 국가 위기 상황의 중심에 서서 소재·부품·장비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창훈 한국재료연구원 철강재료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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