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식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기성의 앎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멈출 때, 즉 이 같은 열정이 부족할 때 무지를 향한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알고 싶지 않는 마음’에서)

지식정보화 시대,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그 어느 때보다 서로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지만, 가짜뉴스와 음모론, 권력자· 추종자의 말을 무조건 믿고, 다른 정보에는 눈과 귀를 닫는 이들이 많다. 지식 만큼이나 무지가 권력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지젝과 함께 슬로베니아 학파를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 레나타 살레츨은 라캉의 표현을 빌려,이를 ‘무지를 향한 열정’이라고 말한다.

라캉은 정신분석 상담을 하러 온 환자들이 자신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하면서도 실제 진실을 맞닥뜨리면 그것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태도를 보며, 이를 ‘무지를 향한 열정’이라고 표현했다.

살레츨의 근저 ‘알고 싶지 않는 마음’(후마니타스)은 사람들이 불편한 정보를 왜 회피하고 무시하는지, 무지의 권력이 얼마나 놀랄 만큼 새 힘을 얻고 있는지 들려준다.

불편한 정보를 무시하고 부인하며, 지도자의 말이 거짓으로 가득해도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지금 탈진실 시대의 다른 점은 ‘인지적 무기력’의 확산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무엇이 옳고 거짓인지에 대한 무관심의 증가다. 이런 무기력은 저자에 따르면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무능력과 관련이 있다.

대중은 어떤 정보를 믿고 어떤 정보를 믿지 말아야 할지 알아내기 어렵고 계속 평가를 해야하는 피로감을 갖게 된다. 이는 미디어에서 제공되는 것들이 똑같이 편견에 물들어 있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고, 결국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정상적 정치적 소통의 통로 밖에서 진실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것이다.

살레츨은 책에서 유전학과 뇌과학, 빅데이터, 스마트폰 앱 등 새로운 환경이 인간 존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타인을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조명한다.

그 중 지식기반 경제의 허상을 지적한 부분은 날카롭다. 살레츨은 지식기반 경제라는 게 사실은 무지의 경제라고 말한다. 기업이 이윤을 위해 상표, 판권, 특허 등으로 지식에 대한 일반의 접근을 막고, 지식 공백을 창출해 돈을 벌고 있다는 설명이다. 검색 엔진 같은 첨단 기술 역시 클릭 한 번으로 알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오지만 실은 앎에 대한 깊은 생각의 여지를 제거한다. 저자는 이런 검색엔진의 시대를 ‘사회의 이케화’라고 부른다. 뭐든 검색해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 안다는 착각은 진짜 전문가를 무시하게 만든다.

또 하나 흥미로운 통찰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들의 이성혐오현상이다. 저자는 그 배경에 소셜미디어 유행을 꼽는다. 너도 나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려하고 ‘좋아요’ 횟수로 인정을 받으려는 시대에 인정과 무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인정을 못받고 있다는 느낌이 무시당하는 고통으로 다가와 분노와 실제 폭력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인셀’은 비자발적 독신주의의 약자로, 자신이 인기없고 섹스를 못하는 게 나를 무시하는 여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온라인에 여성혐오적 글을 포스팅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는 여성을 갈망하는 비틀린 인정욕구에 다름아니다.

책은 팬데믹 상황에서 각국 정상들이 보여준 전략적 무시를 비롯,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선진국 시민들의 마음, 병을 외면하는 불치병 환자의 마음 등 진실을 외면하려는 마음과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현상들을 보여준다. 냉전시대 슬로베니아와 주변국 상황, 공산당에 숙청된 가족사가 어떻게 자신을 바꿔놓았는지 경험과 고백도 울림을 준다.

알고싶지 않은 마음/레나타 살레츨 지음,정영목 옮김/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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