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도 지나고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 시기는 들판과 과수원에서 작물이 한창 익어가는 때다. 농부들이 봄여름 내 땀 흘려 땅을 일구고 꽃과 열매를 돌본 노력이 고스란히 알차고 맛 좋은 열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과학기술인 경력 생애주기 관점에서 볼 때 한 해 농사에서 과실이 영그는 이때는 막 졸업한 이공계 박사가 완숙한 연구자로서 성장해가는 단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박사후연구원(postdoc)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박사후연구원협회는 이들을 ‘학위 취득 후 향후의 경력에 필요한 역량을 얻기 위해 정해진 기간에 연구 또는 학문적 훈련을 지도받는 자’로 정의했다. 주목할 것은 박사후연구원에게는 여전히 훈련과 멘토링, 연구활동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박사후연구원이 성장할 토양이 척박해지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사후연구원 숫자는 증가하는데, 이들이 진출을 희망하는 대학 및 공공기관 정규 일자리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산업계 진출이나 창업 등 경력 전환을 할 수 있는 지원 체계도 미비한 실정이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수립한 ‘과학기술인재정책 중장기 혁신방향(안)’에 따르면 이공계 신규 박사 졸업자의 25%가량이 박사후연구원이 된다. 최근 5년간 이공계 박사 졸업자 수를 고려하면 연평균 1600여명이다. 한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분석결과에 따르면 초기 박사후연구원의 37%가 지도교수 과제에 소속돼 독자적인 연구 수행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자체 조사결과, 이들 박사후연구원이 소속된 대학, 연구기관에서 받는 지도 수준은 ‘논문 리뷰’ 정도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이들 10명 중 7명은 경력 및 역량 개발을 ‘나 홀로’ 해결하고 있어 지원 사각지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사후연구원 문제는 최근 주요 선진국에서도 동일하게 제기되고 있다. 올해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에서 발표한 ‘신진 연구자의 경력 불안정성 해소방안’ 연구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국도 박사 학위자 수가 해마다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고용 환경 등이 악화되는 추세다. 다만 해당국들은 이와 관련해 박사후연구원을 지원할 전담기관이나 기구를 설치·운영하고, 대학이나 기관에서 이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박사후연구원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했던 미국은 2003년 박사후연구원협회를 설립해 관련 통계조사를 실시하고 20개 직업 경로별 경력 설계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박사후연구원에 대한 카운슬링, 훈련, 지도 등을 의무화한 ‘COMPETES 법’을 제정했다. 이를 근거로 대학과 연구원에서는 이들에게 다양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에 우리나라도 박사후연구원에 대한 지원 체계를 기존 인건비 또는 연구비 지원 중심에서 통계조사, 경력 개발 지원, 다양한 역량교육까지 아울러 두텁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전담기관 지정, 제도 정비 등도 시급하다.

소위 박사후연구원은 창의성과 연구생산성이 가장 높을 때다. 이들에게 안정적인 연구·개발 환경을 제공함과 동시에 각자가 희망하는 경력 경로에 부합하는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이제 막 연구 여정을 시작한 박사후연구원들의 노력과 국가의 때에 맞는 지원이 합을 이루는 ‘줄탁동기’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박귀찬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KIRD)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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