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편혜영 지음, 문학동네)=관계의 복잡성, 삶의 이면을 그만의 프리즘을 통해 예민하게 읽어온 작가 편혜영의 여섯번째 소설집.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쓴 단편 가운데 성격이 유사한 여덟 편을 골라 묶었다. 소설은 모두 평범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 어떤 일을 계기로 관계가 꼬이고 변하고 기이해지는지 서늘한 시각으로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 바탕에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거짓말, 혹은 하지 못한 말이 자리잡고 있으며, 층의 아래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가족과의 관계, 과거의 작은 실수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곳으로 떠나지만 문제는 더 폭력적인 모습으로 몸집을 키우며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의 주인공은 치매를 앓는 장인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산골로 이사한다. 정신적 문제로 직장에서 쫒겨나자 아내는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모셔와 형제들로부터 생활비를 얻어쓰다가 인적이 드문 시골로 이사한다. 주위엔 옥수수밭 뿐인 그곳에, 한 보안업체 직원이 찾아와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계약을 하라고 종용하는데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한다. ‘호텔 창문’은 강에 빠진 자신을 구하다 죽은 사촌형에 대한 죄책감과 큰어머니가 강요하는 심적 부담을, ‘플리즈 콜 미’는 사업실패로 재산을 모두 잃고 급작스런 치매를 앓게 된 남편의 실종, 그에 따른 불면증과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화자가 유학 중 공부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된 딸과 사위집을 찾아가지만 그곳도 더는 버틸 곳이 못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리고 혼란에 빠지는 얘기를 그려낸다. 소설은 심리적 변화를 스릴러적으로 풀어내 긴장감을 유지한다 .
▶순서 파괴(콜린 브라이어·빌 카 지음, 유정식 옮김, 다산북스)=아마존 성공의 법칙, ‘아마존인 되기’의 DNA를 내부자의 눈으로 밝힌 책.아마존이 성장하는 가장 결정적 기간동안 기술 부사장과 제프의 기술고문역으로 12년을 보낸 콜린 브라이어와 아마존 디지털미디어부문 부사장으로 일한 빌 카가 공동 저술했다.이들은 아마존의 독특한 성공의 비밀로 제프의 확고한 원칙을 든다. 다름아닌 고객에 대한 집착과 장기적인 관점이다. 아마존의 제품과 프로세스는 모두 고객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를 공식적으로 ‘워킹 백워들’라고 부른다. 둘이 합쳐 25년간 아마존에서 경험한 것들을 녹여낸 이 책의 미덕은 ‘아마존인 되기’가 어떻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는지 세부를 보여준 데 있다. 가령 아마존이 어떻게 개별 팀과 회사 전체의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 이 둘의 목표를 맞춰나가는지, 또 직원들이 내부 경쟁과 단기적 이익을 둘러싼 유혹을 극복하고 협업과 장기적 관점에 관심을 두도록 독려하며 보상하는지 등이다. 아마존의 또 다른 대원칙인 인재 구하기와 관련, 독특한 채용 프로세스인 ‘바 레이저(기준 올리기)’와 효율적인 회의진행 방식으로 도입한 내러티브 문서 작성법까지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한 ‘워킹 백워드’ 프로세스도 공들여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멀리서 읽기(프랑코 모레티 지음, 김용규 옮김, 현암사)=문학 텍스트에 집중, 구조를 꼼꼼하게 읽는 기존의 문학읽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평의 틀을 제시했다. 모레티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할 당시 미국 비평계는 신비평 이후 해체비평과 신역사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의 이론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역사나 텍스트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텍스트에 접근하는 방식은 텍스트의 구조와 의미에 주목하는 꼼꼼한 읽기의 전통을 따랐다. 모레티는 이런 읽기를 “엄밀하게 선별된 극소수의 텍스트들에 대한 극히 엄숙한 읽기”라고 말한다. 이는 문학의 조건들에 무지하다고 비판하면서, 그는 문학의 역사적 ·형식적 읽기에 나선다. 소위 ‘멀리서 읽기’다. 즉 문학의 장치, 주제, 비유, 장르, 체계와 같은 형식들을 사회체제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읽어내는 것이다. 진화론과 세계체제론을 문학의 형식과 역사적 전개와 결합한다든지, 19세기 영국·프랑스 소설의 전 유럽 확산과 20세기 미국 영화의 전 지구적 확산 양상 분석, 7000권에 이르는 영국 소설 제목의 다채로운 분석 등 특히 수량적 문학 연구는 데이터과학 시대에 문학과 사회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