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건에 3조4869억원. 지난 11년간(2009∼2020년 6월) 의사 또는 약사 명의나 자격증을 대여받아 의료기관·약국을 불법 개설해 운영하는, 일명 ‘사무장병원’ ‘면허대여약국’(불법 개설 요양기관)의 적발 건수와 그 부담금액이다. 불법 개설 요양기관들은 과잉 진료·환자 유인 등 불법행위로 의료 체계를 파괴하고 건강보험재정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올 6월까지 누적 환수율은 5.22%에 불과해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황. 정부·지자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명의 변경 등 불법 개설 요양기관의 수단과 방법은 점차 지능화되고 있다. 보건의료 전문 수사인력 부족으로 평균 11개월의 수사기간이 소요되기에 기민한 수사 대응은 지금으로선 요원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불법 개설 요양기관에 한해 건보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이하 특사경)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법사위에 계류된 채 국회가 종료돼 폐기됐다. 수사권이 없는 건보공단의 행정조사 한계로 유의미한 단속은 현재 어렵다.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주된 이유는 보험자인 공단에 사법경찰권이 부여되면 수사권 남용이 우려된다는 것. 이해당사자인 일부 의료계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20대 국회 개정안에서는 공단 이사장이 특사경 추천권이 있었다. 때문에 선발공정성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특사경의 직무 범위는 불법 개설 요양기관에 한하고 있다.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대다수 병의원은 수사권 남용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불법 개설 요양기관들이 퇴출되면 보험료의 합리적인 배분과 의료생태계의 자정 작용이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의 누수 방지에도 기여도가 클 것이다.
21대 국회는 보다 세심한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 8월 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사경법 개정안은 공단 이사장이 아닌 복지부 장관이 특사경 추천권을 갖도록 했다. 의료계의 수사권 남용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다. 9월에는 서영석 의원이 이에 더해 공단에 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수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혐의 의심건만 수사해 불법 개설기관만을 표적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불법 개설 요양기관에 대한 수사전문성이 강화된다. 의료인들은 양심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의료 환경도 조성된다. 동시에 건강보험의 재정을 지키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 의료 체계는 영리추구에 앞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정립돼야 한다. 복지부, 공단, 공급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는 각자 영역에서 이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생부터 불법인 사무장병원은 병실당 병상 수가 많고 의료인 근무비율이 낮다. 의료환경이 열악할 뿐만 아니라 중증환자 사망률과 주사제 처방률, 항생제 처방률도 일반기관보다 매우 높아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건강보험 특사경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돼 불법 개설 요양기관을 퇴출시키고 보험재정 안정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 실현도 앞당겨질 것이다.
홍무표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강원지역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