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관광업계 목소리 경청할때 발전 있었다
투어2000대표, 전 한국여행업협회 회장 역임
단절은 갈등 양산...교류는 평화의 원인이자 결과
모든 영역의 허브, 국격 직결되는 관광 중시해야
조선업 비해 작은 여행업 백신투약 때까지 지원을
[대담= 헤럴드경제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6년간 여행업협회를 이끌던 업계 리더 양무승 서울시 관광인 명예시장 겸 투어2000 여행사 대표는 ‘여행평화론’의 주창자이다. “여행은 평화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관광허브론’을 설파하기도 했다. 마치 관광은 약방의 감초처럼, 모든 외교 담판, 통상 협상, 국제정치 과정에 허브(Herb)향을 풍기는 촉매이고, 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과 감성적 고리를 연결한 허브(Hub)이며, 국가브랜드와 직결된다는 논리를 편 인물이다.
정치 외교와 커뮤니케이션 등을 다루는 사회과학부의 행정학 전공자 출신의 여행업 경영자이다. 양 대표는 소소한 경영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데에는 거시적, 철학적, 인문학적 필터링를 거친다. 여행업을 하면서 모객·송객 만 보지않고 폭넓은 안목과 실증적 예측을 중시하던 몇 안되는 업계 리더이다.
▶행정학 전공자가 여행업을 택한 이유= 그런데, 그가 여행업계에 첫 발을 디딘 동기를 들어보면 좀 허무한데, 곱씹어 보면 교훈도 있다. 대학 졸업이 몇 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행정학과를 나와 행정을 해야할텐데 고시 준비도 안돼 있는 상황에서, 하릴없이 길을 오가다 우연히 한 선배를 만난다.
“무승이 자넨, 친화력도 좋고, 외국어도 잘 하며, 한국을 좁게 느끼는 초대형 오지랖에다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생명력을 가졌으니, 여행사가 딱 맞을 것 같은데.”
길 위에서 들은 이 말은 준비된 조언이 아니었음에도 양무승 대표가 여행업 길을 걷게 된 유일한 동기였다. 양 대표는 “지내 놓고 보니 맞는 것 같다”며 미소 짓는다. 따지지 않고 무심하게 충고한 것이 가장 정확한 진단일 수 있는 것이다.
무용을 잘하고, 탁구 선수도 했던 어머니의 재능·활동적 삶의 자세, 영암에서 면장을 지낸 아버지의 리더십이 조화롭게 양대표의 DNA로 형성된 점 역시, 그의 ‘여행+경영+정책’ 수완과 무관치 않다.
양 대표가 여행사에 입사한 1980년은 해외여행자유화가 되기 전이었다. 이어 자유화조치가 시행된 1989년부터 IMF 구제금융기를 거친 10년간은 그야말로 격변기였는데, 국제 관광교류에 미숙하기 짝이 없는 우리 시스템을 목도하면서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가졌다.
▶관광교류를 ‘사치’로만 여긴 편견의 혁파= 양 대표가 느낀 가장 큰 문제는 해외여행을 평화적 교류와 배움, 민간외교, 이질적 문화의 이해 등으로 이해하지 않고 ‘사치’로만 여기는 것.
1980년대 초에는 일본 여행 간 한국인들 사이에 ‘꼬끼리 밥솥’ 사오기 열풍이 불었다. 이때 당국은 트집 잡아 압수하기 일쑤였고, 몇몇 언론은 ‘밥통’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뒤 대만에서 온 방한여행객들이 한국산 담요를 무더기로 사가는 열풍이 분다. 북위 25도 정도인 대만은 난방기를 쓰는 문화가 없는데, 1년에 한두달은 춥기 때문에 가볍고 보온성·발열성이 뛰어난 한국 담요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 이때 당국은 돈 벌어서 좋았는지 희색할 뿐, 무슨 시사점이 있는지 찾으려 하지 않았다.
여행사 스태프를 괴롭히는 건 한국의 복잡한 출입국 수속, 우리가 실제로 가진 능력에 비해 저평가된 국가브랜드와 미약한 여권파워 등이었다. 1인 다역을 맡았던 현장 스태프들은 후진적 시스템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고, 기회가 닿을때 마다 건의해 관철시켰다.
여행 가면 가족,친지의 선물을 하려는 마음을 동양인들은 갖는다. 이같은 문화를 서양인들이 먼저 사업화로 연결하는데, 바로 여행자 쇼핑센터이다.
▶“지장,덕장,용장 보다 뛰어난 건 현장”= 이런 얘기는 양 대표를 비롯한 여행사 현장 스태프들이 당국과 다른 산업계에 알리면서 한국도 뒤늦게 나마 이 부분에 관심을 두게됐고 빠르게 정착됐다.
그는 “지장, 덕장, 용장도 좋지만 현장이 최고”라면서 정책결정자들이 현장 목소리를 최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측이 한국 항공·관광·숙박업계에 넉달 늦게 대금을 결제하던 문제도 현장목소리를 청취한 정부 당국간 담판에서 해소했다.
뭘 좀 바꿔보자고 현장이나, 대포집, 찻집에서 조언하고 다독이던 사람들은 모두투어 우종웅 창업주, 하나투어 박상환 회장, 고려여행사 고정용 대표, 모두투어 한옥민 부회장, 참좋은여행 이상호 대표, 하나투어 김진국 대표, 여행신화 강찬식 대표, 그리고 양 대표 등이다. 다들 현재 관광강국을 이끄는 리더들이다. 서너달 전 코로나가 잠시 잦아들던 때 옛 동지들은 다시 만나 그때 처럼 열정 담긴 의견들(TMI)을 교환했다고 한다.
양 대표는 “한국인들이 외국가서 무엇에 감동하는지, 외국인들은 한국와서 무엇을 좋아하고 사가는지 살피면, 산업구조 개선 전략, 수출전략, 한국의 호감도 상승전략 등의 시사점도 얻는다”면서 “국제 관광교류는 그래서 여타 산업, 경제, 문화, 국제정치와 연결된 허브”라고 일갈했다.
▶관광평화론= 그는 1961년 제정된 관광진흥법의 취지가 아직도 ‘외국인 유치’에 방점이 놓여있는데, ‘상호 양방향 교류’라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면 상대국은 우리나라에 자국민을 더 많이 보내려 노력하고, 이게 잘 안되면 뭔가 미안한 마음에 다른 산업 혹은 다른 협상에서 한국에 기회를 주려하는 인지상정은 지금까지 국제관계에서 어김없이 이어진다고 양대표는 덧붙였다.
나라간 갈등, 세계적 재난이 생겨 관광 교류가 뜸해지거나 단절되면 연쇄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항공사,여행사,관광숙박업의 경영마비가 오는 것은 물론이고, 교민사회의 정치,경제기반이 붕괴된다. 재외국민은 중요한 안전판인데, 단절과 붕괴가 초래되면 고국의 여행자, 행정가, 비즈니스맨들은 그 나라 출장과 여행을 가더라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게 된다. 즉 평화가 있기에 교류를 하고, 교류를 하기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양 대표는 “코로나로 인한 단절 국면에서 친하던 국가들 조차 관계가 매우 불안함을 보여주었다”면서 “한편으론 그간 국내항공사들의 노고와 중요성, 소비자들의 아량과 업계에 대한 연민, 여행업계 동료들의 의리와 생명력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생긴 일= 1990년대초 양 대표가 인도여행 안내자로 갔다가 겪은 일화는 새로운 시사점을 준다. 불교지도자들의 성지순례를 인솔했을 때, 한국의 귀한 손님들을 반기는 현지의 협조 덕에 최고 호텔인 델리하얏트에 투숙했다. 기온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려, 일행은 가장 시원한 현지 의상을 하나씩 구입했다.
그리고는 유니폼처럼 이 옷을 입고 이 최고급 호텔 로비에서 오래도록 토론·환담하고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들, 호텔리어들의 시선이 석연찮다는 것을 느낀 건 이 옷을 입은 지 한두시간 지나서였다고 한다. 호텔리어를 불러 물어보니, 일행들이 입고 있던 건 인도인들의 잠옷이었다고 한다.
일행은 부랴부랴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현지문화를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행가는 나라에 대해 사전 공부를 해두는 것은 양국 국민간 어색한 상황을 없애고 우정을 키워가는 발판 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회사 지켜줘 고맙다 후배들, 할 수 있는 것 딱 하나만 하자”= 양 대표는 직장생활을 7년 한뒤,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항공에이전트(GSA)업을 시작하면서 경영에 나선다. CEO라고는 하지만 발품을 파는 일이었다. 지금의 투어2000은 1999년 창업했다. 마케팅에 고객응대에 기획에 인솔까지 1인 4역을 하는 고단한 여행업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지만, 친구의 친구, ‘여사친’이었다가 평생동반자가 된 부인 최계옥(64) 여사의 지원과 격려 때문에 버틸수 있었다고 한다.
“여행사 사람들의 생명력은 최고라서 이번 위기도 이겨내고 다시 폭발적으로 부활할 겁니다. 서울관광 홍보대사인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처럼.”
양 대표는 직원들에게 “회사 지켜줘서 고맙다. 우리 오래 가야 하니 큰 욕심 내지 말고, 할수 있는 것 딱 한가지만 하자”고 다독인다.
조선업 지원규모의 10%도 안되는 여행업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시한을 정부가 백신개발 및 투약 시점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양 대표는 투어2000의 이직자가 없다는 점을 자랑하면서 희망의 너털웃음을 잃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