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 큐레이터 윤재갑 하오아트뮤지엄 관장이 진단하는 중국 미술시장 [항저우(중국)=김아미 기자] 지난해 10월 ‘홍콩 소더비 40주년 기념 추계 경매’가 열린 홍콩 국제컨벤션센터.
중국 작가의 유화 한 점이 아시아 현대미술 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며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열두 제자를 공산당원으로 묘사한 쩡판즈(曾梵志ㆍ50)의 작품 ‘최후의 만찬(2001)’이 1억8044만홍콩달러(249억2천만원)에 낙찰된 것이다. 스위스 컬렉터가 2002년 베이징에서 사들였다가 경매에 내놓았다. 쩡판즈는 현재 중국, 홍콩은 물론 독일, 스위스 등 유럽 컬렉터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프랑스 미술시장 통계업체 아트프라이스가 올해 내놓은 ‘2013년 아트마켓 분석’ 보고서에서 중국 미술시장 규모(매출액 기준)는 41억달러(4조15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21% 증가한 수치로, 4년 연속 세계 1위 규모다.
중국 미술시장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중국 작가의 작품 한 점이 수백억원에 거래되고, 파워컬렉터라는 이름의 슈퍼리치와 아트펀드는 미술관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윤재갑 상하이 하오아트뮤지엄 관장은 이처럼 핫한 중국 미술시장을 ‘몸집은 크지만 정신연령은 낮은 청소년’라고 표현했다. 중국, 미국, 유럽,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대안공간과 상업화랑을 두루 거친 윤 관장은 ‘중국통’으로 정평이 난 큐레이터이자 한국인 최초 중국 사립미술관 관장이다. 2011년엔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기도 했다.
최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 전시회에서 만난 윤 관장은 중국 미술시장을 마냥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미술시장은 지난 5~10년 사이에 투기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청소년처럼 몸집은 커졌지만 정신연령은 여전히 성인이 안 된 상태죠.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 관장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자본이 극도로 풍부해지면서 중국 미술계에도 핫머니가 대거 유입됐다. 중국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빠르게 안정되면서 문화적인 수요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미술시장이 급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 미술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띄면서 중국의 파워 컬렉터 뿐만 아니라 유럽의 컬렉터들도 그 ‘미래가치’를 보고 작품을 사들이니 시장 원칙에 따라 작품 가격도 급등하게 된 것이다.
결국 중국 미술계에 ‘거품’이 많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시장이 먼저 뜨면서 작품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니 미술관은 그림을 사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미술관이 컬렉션을 하기 힘들어졌다는 거죠. 미술관이 컬렉션을 쌓지 못하니 그만큼 미술계 전반의 인프라는 여전히 열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중국 미술계의 중추적 도시인 상하이에는 큰손 컬렉터 ‘빅3’가 설립한 미술관들이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중국의 금융재벌이자 베이징, 홍콩 미술시장의 큰 손 컬렉터로 유명한 류이첸과 왕웨이 부부는 지난 4월 푸시 지역에 대지 3만3000평방미터(약 1만평)에 달하는 상하이 최대 사립미술관 롱(龍)미술관을 개관했다. 이 지역에는 이미 세계 10대 컬렉터인 화교계 인도네시아 축산재벌 부디 텍(중국명 余德耀ㆍ위더야오)의 유즈미술관이 세워져 있다. 또 아시아 현대미술 컬렉터로 유명한 호텔재벌 쩡하오(郑好) 완허(萬和)그룹 회장도 오는 2017년 하오아트뮤지엄을 개관할 예정이다.
이처럼 상하이를 기반으로 한 미술계 빅컬렉터들이 잇달아 대형 미술관을 짓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대다수의 중국 미술관은 시설면에서 매우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관련 법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한 것도 중국 미술계의 거품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다.
“중국에는 아직 ‘미술관법’이 없어요. 미술관은 많은데 미술관으로 등록된 정식 미술관이 없다는 얘기죠. 그만큼 허술한 점이 많습니다.”
윤 관장은 중국의 섀도뱅킹(shadow bankingㆍ그림자금융)이 중국은 물론 세계경제의 잠재적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가운데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아트펀드라고 말했다. 투자 목적으로 뭉친 아트펀드가 오로지 그림을 사고 파는 수단으로 아케이드 상가 지하같은 곳에 ‘날림공사’ 하듯 미술관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관들은 한국의 지방 사립미술관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이 가져야 할 최대 덕목인 ‘공공성’이 상실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윤 관장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수억원대에 거래되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빈부격차가 가장 큰 곳 중 하나가 바로 중국입니다. 그만큼 중국 미술계에도 수십억원대 부자 화가부터 밥 굶은 화가까지 천차만별입니다. 한국은 중국 미술시장의 상위 1%만 보고 부러워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처럼 자본의 영역만이 비대하게 부각된 중국 미술시장을 반면교사로 한국 미술계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윤 관장은 자본을 가진 오너가 사립미술관을 통해 개인 컬렉션 위주의 전시를 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대형 사립미술관이나 갤러리들은 해외 유수 미술관 전시에서 뜬 작품들을 사들여 국내에서 전시하고 팔고 있죠. 돈은 벌겠지만 영향력은 키울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세계적인 큐레이터, 세계적인 미술관 관장이 나오지 못한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