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년차 맞는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 ‘완벽주의’ 리더십으로 내분·갈등 수습… “올해는 성과 보여주고 싶다” 2막2장 강한 의욕
[대담=이진용 부장] “이게 자랑하기 민망하지만, 지난 3월1일 취임 1주년에 직원들이 선물해준 꽃바구니에요. 버리기엔 소중해서 꽃만 바꾸고 있어요. 그날 직원들과 작은 파티도 했지요.”
강은경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를 최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내 대표실에서 만났다. 테이블 위 취임 1주년 축하 카드가 꽂힌 모록모록한 꽃바구니 너머로 강 대표가 활짝 웃으며 두툼한 책 두권을 건넨다. ‘공연예술법 마스터클래스 4막36장’ 1, 2권. 연극ㆍ음악ㆍ무용ㆍ클래식 등 4개 장르의 전체 36개 해외 분쟁 사례를 소개한 본인의 저서라는데, 몇페이지를 넘겨보니 사례별로 관련 조문, 주제어, 관심사례, 사실관계, 소송의 전개, 쟁점, 법원의 판단 및 판결 이유, 사안의 분석, 에필로그, 토론을 위한 질문 등 일정한 형식에 맞춰 빼곡히 추렸다. 사례 수집에만 5~6년이 걸렸다고 했다.
‘섬세함’과 ‘완벽주의’. 강 대표의 첫인상이다. 일단 일을 맡으면 그 일을 완벽히 해내기 전에는 잠도 못이룰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지난해 초 서울시향 대표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까지 고민을 거듭한 것도 그런 성격에서 비롯됐을 터다.
▶서울시향의 소방수로 나서기까지=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을 앞둔 지난해 초 강 대표는 문화예술법 정책에 관한 논문을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이었다.
“논문을 한창 마무리 중이었는데, 문화예술계 많은 선후배, 동료들로부터 연락이 오는거에요. ‘당신이 시향 대표로 가야한다’고요. 그간 ‘서울시향 사태’를 보면서 ‘문화재가 불타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죠. 저 역시 시향에 애정이 많아서 너무 안타까웠지만 공백기가 커서 ‘어떻게 제가 가느냐, 나는 학문을 완성해야한다’고 사양했죠”.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린 건 ‘우리 문화예술계가 돕겠다’고 요청한 동료들의 간절함이었다. 강 대표는 눈물을 흘리면서 쓴 잔을 받아들기로 했다. 2015년 정명훈 예술감독의 사퇴 등 크고 작은 내홍을 겪은 시향은 수년째 내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였다.
강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더 밝고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소통’에 힘을 쏟았다. 직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많이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 3개월간은 외부 일정을 잡지 않고 문을 걸어잠궜다. 먼저 직원들과 기간제 근로자까지 팀별로 점심 데이트 시간을 만들어 소통했다. 이어 예술단원들은 악기별로 모임을 짜서 만났다. 시향은 직원과 단원간의 근무 여건과 형태가 크게 달라 별도의 소통이 필요했다. “공공기관장으로서 ‘조정자’ ‘통역가’가 되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왔는데, 그래도 소통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자평하건대, 1년 만에 최대 고비는 넘겼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비온 뒤 땅이 굳는달까요. 제가 수습할 부분이 없진 않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이고,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할 것이고, 느리고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구성원들과) 함께 같이 갈 겁니다.”
첫해는 조직 파악의 시기라면, 2년차인 올해는 성과를 보여야할 때다. 시향은 올 상반기에 음악감독 선임 절차를 마무리하고, 러시아 5개 도시 순회공연에 나선다. 경영 정상화 부문에선 임금체계와 인사평가제도 개선방안 수립 용역을 발주해 이 달 중 결과가 나온다. 교과서에 나오는 음악들을 위주로 중학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교과서 영상화 사업’을 지난해 마치고, 지난 2월 시교육청과 업무협약으로 380여개 중학교에 해당 영상을 배포할 수 있게 했다.
가장 큰 문제인 자주재원(2018년 56.2%) 수입 달성을 위해 후원회를 활성화한다. 시향은 작년 12월에 신규 후원회 ‘메체나티’를 발족했다. 활동이 중단된 후원회인 ‘페이트론스’가 활동을 재개했다. 시향은 재원 구조와 공연티켓 가격 등 분석을 포함해 중장기 재정안정화 계획을 올 상반기에 세울 예정이다.
그는 “시향 구성원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나아가야 예전처럼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SKY캐슬’을 박차고 유럽 예술투어에서 찾은 진로=교향악단계 ‘여성 수장’ 시대를 연 강 대표의 이력은 자못 이채롭다. 외조부가 대법원장을 지내고 부친과 남편까지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법조인 가문 출신에 흔치 않게 법률과 행정, 예술을 두루 통섭한 학력, ‘법’과 ‘예술’ 사이를 오간 이력이 그렇다. 피아노 연주자였던 어머니는 교사였던 외조모가 피아노를 선망한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는 시향과 협연자로도 활동했는데, 강 대표는 시향 대표가 되고서야 어머니가 활동한 사진을 보여줘 그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는 강대표에게 피아노를 따로 가르친 적도 없었다. 강 대표가 대여섯살 무렵 유치원을 다녀온 뒤 피아노를 하겠다고 했고, 초등학교 2학년때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예원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3 때 고민이 깊어졌다.
“예원학교에 정말 애정이 많았어요. 무용하는 친구, 이젤 놓고 그림 그리는 친구들 그런 분위기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서 다양한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한편으론 법을 전공해서 사회에 기여도 하고 싶었고, 부모님 권유도 있었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결국 인문계고를 선택하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사법고시 1차에도 합격했지만, 또 다른 호기심과 고민이 솟구쳤다. “법조인의 사고 구조, 즉 흠결을 찾아 지적하고 논리을 찾아 이겨야하는 것들이 저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이건, 무언가 스토리가 있는 걸거야’라고 말하는 편이었죠. 나는 율사가 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사시 2차 시험을 포기하고 유럽 예술 여행을 떠났다. 어머니로부터 등짝 한대 맞았을 법한 장녀의 ‘외도’. 유럽 여행길에서 예술경영, 매니지먼트가 앞선 세상을 보고 난 뒤 그는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예술계로 다시 진로를 틀었다. 경영 쪽 자질을 스스로 확신한 그는 조그만 기획사를 찾아 “여기서 일을 배우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수 있다”고 제안해 취직했다.
“돌이켜보면 당돌했죠. 부모님 기대도 있었고, 내 앞에 온 차(법조계)를 타야하는데, 자꾸 몸도 아프고 타고 싶지 않더라구요. 저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뒤돌아서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때의 선택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공연팀장을 거쳐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길을 떠나며 그는 다시 법률 쪽 문을 열었다.
“예술계에서 법률 관련해서 자주 물어왔죠. 그러다보니 예술복지 현장의 애로 사항을 많이 듣게 되고요. 책임감으로 동료와 후배들의 물음에 응답하기 위해 숙명같은 법 공부를 다시 시작한거죠. 저는 계획적인 삶이 아니라, 그때 그때 문이 열리는대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앞으로 시향의 나아갈 방향이 무엇일까. 강 대표는 교육 분야에서 자주 쓰는 ‘수월성(秀越性)’과 ‘공공성’을 강조했다.
“해외 오케스트라도 그렇고 현대의 예술기관은 뛰어난 예술을 제공하는 ‘수월성’의 과업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지역 사회를 위한 ‘공공성’에도 많이 신경쓰고 있습니다. 동시대 지역사회와 소통하지 않는다면 사실 예술단체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죠. 예술은 소통의 극대화입니다. 관계가 없는 예술이란 매우 공허하죠. 동반성장은 21세기 오케스트라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정리=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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