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점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를 출입할 때 일이다. 금요일 저녁으로 기억한다. 다음 주 써야 할 기획 기사 때문에 오후 예닐곱시까지 취재를 하고 교과부 기자실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평소 친한 다른 매체 기자가 그 시간까지 남아 있었다. 마감이 다 끝난 시간임에는 분명했다. 슬몃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약속 기다려요? 무슨 금요일 저녁에 약속을 잡아?” “아녜요. 내일 피플면에 꼭 넣어야 할 기사가 있는데…. (보도)자료가 아직도 안 오네요.” 크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다음 날 아침 해당 기사를 찾아봤다. 모 사립 유치원의 봉사활동 관련 내용이었다. 굳이 지상(紙上)에 노출될 기사인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자와 식사를 하게 될 일이 있어 궁금했던 점을 넌지시 물었다. 그는 “1진 선배가 부탁했던 일”이라며 “(그 선배가)거기 이사장인가랑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그 이사장은 한유총 내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실체를 제대로 접한 첫 순간이었다. ‘저렇게까지 관리하나’ 싶어 짐짓 한유총에 대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해당 일화는 나중에 따로 확인하지 않아, 기억이 틀릴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이번 일로 한유총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실체를 잘 몰랐다. 여느 사립 교육기관 단체와 달리 이름에 ‘사립’이 들어가지 않아 한유총이 국ㆍ공립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모든 유치원의 연합 단체인 줄 아는 사람도 일부지만 있었다. 이 같은 애매모호한 이름에 철두철미한 로비력과 단결력까지 더해져 한유총은 그동안 무서운 힘을 발휘해 왔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한유총 행사에 참석해 “대형 단설 유치원 신설 자제”를 언급할 정도였다. 이 이야기는 대다수 사립 유치원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부분 학부모의 바람과 동떨어진 나머지 지난 대선에서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의 시발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2년 누리과정 도입 이후에는 국고 지원금 지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교육계 안팎의 요구를 한유총은 “사립 유치원을 사유 재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거부하는 것은 물론 집단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배경에는 대다수 학부모가 자녀를 사립 유치원에 맡길 수 밖에 없는 현실 탓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ㆍ공립 유치원 취원율은 25.4%에 불과하다. 어린이 4명 중 3명이 사립 유치원에 다니는 셈이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의 국ㆍ공립 유치원 취원율은 67%나 된다. 국ㆍ공립 유치원 취원율을 2021년까지 40%로 확대하겠다고 정부는 밝혔지만, 계획대로 실행돼도 절반이 넘는 어린이가 사립 유치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8명이다. 여성 한 명이 아기 한 명도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낮아진 출산율을 탓하기 전에 관련 당국은 아기를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유아교육의 질도 제고돼야 한다. 한유총의 목소리가 커져 학부모가 불안해 하지 않도록 국ㆍ공립 유치원의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ke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