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법 체계에서는 제2, 제3의 지만원씨가 나와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는 약 5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5·18 시국회의와 5·18 역사왜곡처벌 광주운동본부 주최로 ‘5·18 망언 규탄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5·18 발언 논란’을 일으킨 자유한국당 의원 3명의 국회 퇴출과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민중 폭동’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제자리를 잡은 5·18민주화운동은 국회와 법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고, 법으로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됐지만 여전히 5·18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현실이다. 끊임없이 ‘5·18 북한군 개입설’ 주장해온 지만원 씨는 25일에도 시민단체 구국동지회 등이 서울 종로구 공화면세점 앞에서 개최한 집회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군 600명이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5월 5·18 관련 단체들은 지만원 씨를 5·18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당시 지 씨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인 ‘시스템클럽’에 “5·18은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는 글을 올렸다.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5.18 민주화운동 왜곡 모독 망언 3인 국회의원 퇴출, 5.18 학살·역사왜곡 처벌법 제정, 자유한국당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5.18 민주화운동 왜곡 모독 망언 3인 국회의원 퇴출, 5.18 학살·역사왜곡 처벌법 제정, 자유한국당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

당시 검찰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지 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2011년 1월 수원지방법원 1심, 2012년 8월 서울고등법원 2심에서 각각 무죄가 선고됐다. 이어 2012년 12월 27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지 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지 씨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의 연사로 참석해 “5·18은 북한군이 주도한 게릴라전”, “전두환이 영웅이고 5·18은 폭동” 등의 발언을 했고, 또 다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

법조계에서는 이번에도 지 씨의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명예훼손 법리의 한계 때문이다. 정리하면 네 가지 한계점이 도출된다. ▷명예훼손죄에 있어 사실, 가치판단, 의견 등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 ▷집합적 명사를 쓴 경우 그 범위에 속하는 구성원 개인을 특정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는 점 ▷집단 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 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돼 구성원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점 ▷정작 명예훼손죄로 보호받아야 할 구성원이 많은 대규모 집단의 경우 피해자 특정이 곤란한 점 등이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을 명예훼손의 법리로 처벌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제2, 제3의 지만원’은 예고된 셈이다.

이에 명예훼손 법리가 아닌 또 다른 방식의 형법적 규제가 필요하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인은 ‘역사적 사실의 부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학술지 법철학에 실린 ‘기억과 법(홀로코스트 부정)’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의 부인이란 ‘전시 또는 평시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집단살해와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의 부인으로 독일에서 발생했던 홀로코스트 부인(Holocaust Denial)을 꼽을 수 있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부인 등 ‘역사적 사실의 부인’을 대중선동죄로 규정(독일형법 제130조 제3항과 제4항)해 엄단하고 있다. 지 씨의 망언을 지 씨에서 끝내기 위해 이제는 ‘역사적 사실의 부인’이라는 시각에서 이른바 ‘518 부정죄’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승환 사회섹션 법조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