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유전자치료 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 김진수 단장은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와 함께 네이처지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인간 배아에서 심장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손쉽게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로, 이번 연구는 유전병 예방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단장은 이 실험을 미국으로 건너가 진행해야했다. 국내에서는 인간 수정란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연구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바이오의약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핵심 원천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014년 111억5000만 달러였던 재생의학 시장이 2021년에는 494억1000만 달러로 연평균 23.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최첨단 생명공학분야는 기술의 진전속도와 적용범위가 예전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법의 규제가 혁신적인 연구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이다. 현행법에서는 인체 내 유전적 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치료에 관한 연구는 유전질환,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그밖에 생명을 위협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 치료를 위한 것과 현재 가능한 치료법이 없거나 유전자치료의 효과가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경우 등 2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만 가능해 수많은 유전질환에 대한 연구분야가 사실상 막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명공학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들은 “기술적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데 국내의 법규는 관련 연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승인하는 ‘포지티브 규제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새로운 기술시장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유럽국가들은 우리의 이런 현실을 비웃기라고하듯 빠른 속도로 기술격차를 벌려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유전자치료제 개발시 안전조치와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우리처럼 ‘대상질환의 명시’는 없고, 일본은 임상연구 지침에서 치료대상 질환 명시 조항을 삭제하는 등 세계적으로 유전자치료 대상 질환 제한은 없애고 개별연구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성 심사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전자가위기술’은 1~3세대까지 원천기술을 독자개발할 만큼 기술적으로 앞서있지만 법에 의한 연구범위가 너무 협소해 혁신적인 유전자 치료제 개발조차 외국에 나가서 해야만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이런 법적인 장애물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유전자 치료 연구의 범위를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참에 연구 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국가승인이 아닌 기관승인 등 간소화 문제와 유전병치료제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서 종교계나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국민 공감대 역시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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