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1. “600명이 강제징용 당했고, 120명이 죽었다. 하시마 섬은 ‘지옥섬이다’”
2017년 7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군함도(일본명 하시마ㆍ端島)에서 발생한 한인 강제노역 실태를 알리겠다며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15초짜리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진 속 인물은 일본인이었다. 사진 속 장소가 군함도 해저탄광도 아니었다. 시기도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가 아닌 메이지 시대(1860~1910년대)에 찍힌 것이었다. 당시 이른바 ‘테보리’(手堀)라고 불리는 맨손으로 탄을 캐는 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영상에 올라간 사진이 조선인 강제노역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서 교수는 실수를 인정하고 영상을 재편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극우세력은 이번 사건을 “‘한국 혐일(嫌日)정치의 전형적인 예”라며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인했다.
#2. 2015년 4월 “‘일본군이 앞장서 군위안부 모집’ 문서 최초공개”라는 제목의 단독보도가 나왔다. 다수의 언론은 ‘최초 공개’ ‘강제연행 증거 또 발견’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학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이 이른바 ‘최초’ 공개했다는 사료집은 은폐되지도, 비밀문서로 분류되지 않은 채 아시아여성기금(AWJ) 홈페이지에 버젓이 공개돼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20년 전 자료집으로 발간돼 오늘날에는 무료로 인터넷에 공개되고 있는 자료들이었다. 그러나 오류를 바로잡는 기사는 없었다.
복잡한 문제일 수록 기초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피해에 대한 제대로 된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려면 피해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양자외교에서 상대국가의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내는 건 결국 얼마나 튼튼한 명분을 확립하고 상대국의 약점을 잘 공략하느냐에 달려있다. 가해에 대한 배상과 법적 책임을 요구하려면 이에 대한 확실한 논거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되거나 일반화된 정보는 피해의 본질을 흐리거나 내부분열을 야기하기 때문에 피해자 구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자체에 중대한 흠결이 확인됐으며, 해당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2주년을 맞은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존재하는 합의를 파기하고 새로운 책임규명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일본의 논리를 파악하고 분명한 명분과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오히려 책임을 회피할 공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내각은 재협상ㆍ보완 불가입장을 완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합의보다 개선된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일본이 거부할 수 없는 우리만의 논거가 필요하다.
지난 20년 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ㆍ일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학계의 기록을 추적해보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학자들이 전시 일본군 위안부 실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지만, 이들이 공개한 이른바 ‘최초’ 자료들의 다수는 20년 전 일본에서 공개된 자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일본이 부인하고 있는 ‘강제성’의 정의와 우리가 이해하는 ‘강제성’의 맥락도 다르다.
총 10여 편의 온라인 기획으로 구성된 [다시, 위안부 문제]를 통해 지난 30여 년간 위안부 문제의 담론 전개과정과 피해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다. 또,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위안부 합의문제와 ‘피해자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위안부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한다. 기사는 매주 주말 3편씩 온라인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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