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대변하는 짐 내려놓고, 연구에 몰두중인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 - “우리 경제 회복국면 맞지만 양극화 해소해야 장기적 성장 가능”
[헤럴드경제=정순식ㆍ이승환 기자] ‘외형적으로는 탄탄한 성장의 경제. 하지만 기저에 깔린 양극화 심화에 따른 체감 경기의 부진’
이동근 신임 현대경제연구원장이 바라 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서 정부를 상대로 기업 입장을 대변하고, 수많은 행사와 간담회를 소화하던 그가 새 길을 걷는다.
8년 간의 대한상의 생활을 마치고 민간경제연구원의 수장이 됐다. 30년 공직 생활까지 합하면 그의 첫 민간 이력이다.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현장에서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실상을 파악해온 이 원장이 이제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각종 자료와 연구 서적을 파고 있다.
취임 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사안이 넘쳐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다. 한국 경제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체득하며 정립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회복국면에 접어든 한국 경제, 지속성은 의문= 국책·민간 연구기관의 전망을 종합해보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3% 달성이 확실시된다. 3% 성장률은 2014년 3.3% 이후 처음이다. 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우리나라가 경제 지표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동근 원장은 “경제순위 10위권에 속하는 우리나라가 한해 성장률 3%를 달성했다는 것은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의 10% 정도와 맞먹는 수준”이라며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선 대부분 2%대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성장세의 주요 원인으로 ‘수출’과 ‘추경’을 꼽았다. 실제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 3.8%(전년동기대비) 가운데 정부 지출 기여도가 0.7%포인트 가량 차지했다.
이 원장은 수출부문에서도 전 산업에서 고르게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반도체 착시효과’에 대해 사실상 동의하지 않는 입장인 셈이다.
“최근 부쩍 자주 거론되는 반도체 착시효과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반도체를 빼더라도 일반기계, 석유화학 등에서 성과를 보이면서 10% 이상 수출이 늘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9%에서 2017년 16.8%로 확대됐다. 반도체를 제외한 올해 1~10월까지의 수출액 증가율 역시 전년동기대비 11.9%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성장세를 이어가느냐이다.
이 원장은 올해 우리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 지속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올해 3% 성장의 비결인 수출과 정부 재정지출은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성장률은 다소 주춤할 것으로 보이고 향후 2~3년은 좀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노동정책 속도 조절해야…법인세 인상은 투자매력도 떨어질까 우려= 정부 정책에 대한 그의 분석은 전문가답다. 8년간 몸 담은 대한상의에서 기업 입장을 대변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쌓아왔다.
우선 문재인 정부들어 친노동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업 경영에 부담이 늘고 있는 측면에 대해서도 소신을 피력했다.
이 원장은 “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 증가 등으로 인해 고용과 기업 경영이 더욱 경직되고 있다”며 “여기에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 등이 지속될 경우 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같은 친노동 정책이 기업의 신규 채용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중소기업이 먼저 경영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한계기업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정책이 시행될 경우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될 중소기업이 적지 않을 겁니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 균형잡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조언이다.
우선 정책 추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노동개혁은 필요하지만 새 정책이 기업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며 “현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정책 추진 속도를 조절해야할 시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핵심 과제인 일자리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기업의 고용 창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노동시스템의 유연성을 확대하되,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심해질수록 기업들은 신규 고용을 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 생산성 및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해 기업의 고용 창출력을 높여가야 합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드러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고, 자칫 외국인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세계 각각이 기업경쟁력 강화와 경제성장을 위해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있는 추세”라며 “미국, 독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이 법인세를 내리고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건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야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법인세율 인하가 단기적으로는 세수를 줄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 장재력을 높여 세수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법인세 인상은 외국투자자들에게 한국의 투자 매력도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양극화…해법 소득주도성장은 생산성 향성 병행해야= 이 원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로 ‘양극화’를 꼽았다.
“외형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실상을 보면 불안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등 경제ㆍ사회적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경제·사회적 양극화는 국민의 체감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이는 곧 경제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이 원장의 분석이다.
그는 “경제 지표로는 괜찮은 수치가 나오고 있지만 양극화로 인한 체감경기 악화가 경제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산업계 안에서의 양극화도 문제다. 이 원장은 반도체와 조선업이 대표적으로, 극단에 선 산업이라고 평가한다. 산업계 전반에 시의적절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높이는 대목이다.
이 원장은 “기업 측면에서만 봐도 반도체 등 잘나가는 산업과 조선업과 같이 힘든 산업으로 나눠진다”며 “조선업의 경우 과거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시장을 정상적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꼬집었다.
“현재 공급 과잉으로 조선업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이 고용을 감축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약간의 군살을 빼고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국내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원장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뼈대인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해서는 비교적 높게 평가했다.
수출주도 성장 정책의 반성에서 나온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의미와 함께, 가중되고 있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다만 성장의 혁신 주체인 기업경영 여건 악화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도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의 토대인 소득증대, 소비지출 확대, 생산 및 투자 증가의 선순환을 촉진시키고 이를 저해하는 위험요인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며 “결국 소득확대가 생산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적절히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nice@heraldcorp.com
◈<이동근 원장이 걸어온 길>
▷1957년 서울 출생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미국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 석사 ▷동국대 행정학 박사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 합격 ▷2005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2006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균형발전정책국장 ▷2007년 산업자원부 남북산업협력기획관 ▷2008년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에너지정책관 ▷2009년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장(2009)▷2010~2017년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2017년 11월~ 현대경제연구원장
◈<이동근 원장이 그리는 현대경제연구원의 미래>
오랜 공직 생활과 경제단체 임원을 거친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 그의 40년 이력 가운데 현대경제연구원장 자리는 생애 첫 민간영역이다. 그래서 이 원장의 관심은 민간경제연구서로 현대경제연구원의 미래를 재정립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그는 “국내 경제연구소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국가 연구소와 삼성ㆍ현대ㆍLG 등의 민간 연구소로 이원화돼 있는데, 최근 삼성이나 LG가 그룹 관련 컨설팅과 연구 활동에 주력하는 탓에 대외적인 경제연구를 발표하는 곳은 사실상 현대경제연구원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이 원장은 현대경제연구원이 비록 현대그룹에 속해 있지만 그룹의 이익 만을 대변하기 보다는 민간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경영전략이나 경제 동향 등 연구ㆍ분석 자료를 수시로 제공해 기업 경영의 나침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는 그러면서 씽크탱크의 본고장 미국이 자랑하는 헤리티지재단이나 브루킹스연구소 등에 비해 오히려 국내 민간경제연구소가 보다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정권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곤 한다. 싱크탱크들이 보수ㆍ진보 성향으로 이념적 분화가 돼 있기 때문이다. 공화ㆍ민주당 중 어느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헤리티지재단은 가장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이며, 브루킹스연구소는 진보 성향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민주당 성향을 대변한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강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경제정책으로 좁혀보면 사실 양쪽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또 하나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현대경제연구원이 강점을 지닌 대북 연구 기능이다. 현대그룹은 과거 현대아산을 통해 대북사업을 진행해 왔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대북사업이 중단된 탓에 대북 연구 기능 또한 위축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 원장은 “과거 산업자원부 시설 남북산업협력기획관에서 국장 역할을 맡으며 개성공단도 직접 다녀오는 등 대북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며 “현재 북한 핵개발 등으로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지나고 있으나 남북관계는 단 한순간에도 급물살을 타며 화해 기조로 돌아설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북 연구 기능의 핵심 인력을 유지하며 한반도나 통일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 중이다.
